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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북구)44

광주 십신사터 석불(光州 十信寺址 石佛, 유형문화재 제2호) 광주 십신사지 석불(光州 十信寺址 石佛, 유형문화재 제2호)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111(용봉동) 민머리에는 구멍이 있어 보관을 썼던 것으로 보이며 타원형의 평판적인 얼굴에서는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이 느껴진다. 돌기둥의 형태를 변형하지 않고 얼굴 너비와 거의 같은 너비로 어깨를 만들어 신체는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가슴 쪽으로 들어 보주(寶珠) 같은 것을 쥐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대어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얼굴에 비해 경직된 모습이고 기법도 떨어져 보인다. 대좌에는 연꽃무늬와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역시 딱딱한 모습이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십신사터 석불이다. 머리에서 대좌까지 모두 화강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조각 수법이 고졸한 편이다. 논산.. 2023. 6. 7.
가야금 병창(伽倻琴 弹唱,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 병창(伽倻琴 弹唱, 무형문화재 제18호) 광주 북구 향토문화로 27-1(중흥3동) 가야금병창은 민요나 단가, 판소리 일부 대목을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부르는 연주형태를 말한다. 가야금병창은 조선후기 명창인 신만엽과 김제철이 민요나 단가, 판소리의 한 대목을 가야금의 기악적 특성을 살려 소리의 선율을 가야금에 맞도록 기악화시켜 가야금병창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판소리의 '석화제' 곧 가야금병창제를 창안하였다. 이후 김창조, 오수암 등 초기의 가야금산조 명인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심상건, 강태홍, 오태석, 정남희 등 가야금 명인들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다. 가야금병창 곡으로 널리 알려진 대목은 새타령, 남원산성 같은 민요와 함께 , , , 같은 단가, 그리고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 중 , 흥보가의 , 수궁가의.. 2023. 6. 6.
풍암정(楓岩亭) 풍암정(楓岩亭) 풍암재길 117(금곡동) 충효동 분청사기 전시관 앞을 지나 오솔길을 한없이 따라가다 보면 단풍나무 가로수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깊은 산골짝도 아니련만 제법 심산유곡의 운치가 느껴진다. 계곡이 그렇고 노송이 그렇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풍암 저수지가 나온다. 크지는 않지만 가득 찬 물이 산 그림자를 안고 있어 비취 빛깔의 물빛이 인적 없는 깊은 골짜기에 들어온 듯하다. 풍암정은 그렇게 계곡을 건너 바위 등을 밟고 올라서면 참으로 단아하게 서 있다. 소나무와 바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한 모습 때문일까? 여느 정자보다 작고 아담한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조선조 선조와 인조 때 활동했던 김덕보는 큰형 김덕홍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작은형 김덕.. 2023. 6. 5.
충효동 정려비각(忠孝洞 旌閭碑閣, 기념물 제4호) 충효동 정려비각(忠孝洞 旌閭碑閣, 기념물 제4호)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충효동) 이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장군과 그 부인 흥양 이 씨(興陽李氏), 그 형 덕홍(德弘)과 아우 덕보(德普) 등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의 마을 앞에 세운 정려비각이다. 이 비각은 1788년(정조 12)에 왕의 윤음(綸音)으로 표리비(表里碑)가 세워졌고, 충효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정려비는 1789년(정조 13)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조선국증좌찬성충장공김덕령 증정경부인 흥양 이씨 충효지리(朝鮮國贈左贊成忠壯公金德齡 贈貞敬夫人興陽李氏忠孝之里)’라고 새겨져 있다. 그 뒷면에는 정헌대부호조판서 서유린(正憲大夫戶曹判書 .. 2023.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