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림기행8 미암일기(眉巖日記 : 모현관) 7. 미암일기(眉巖日記 : 모현관)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인 유희춘(1513∼1577)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쓴 일기이다. 미암선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수찬, 정언 등의 벼슬을 거쳤으나, 1547년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다시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1575년 이조참판을 지내다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글쓰기로 보냈다.『미암일기』외에도『속몽구』,『역대요록』등을 남겼다. 지금 남아있는 일기는 선조 즉위년(1567) 10월부터 선조 10년(1577)까지 11년간에 걸친 내용이다. 내용 가운데 일부 중간은 몇 군데 빠진 곳이 있으나, 기록된 일기에는 조정의 공적인 사무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매일 일어난 일과 보고들은 바를 빠짐없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2023. 7. 17.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 6. 임대정원림 ( Garden of Lindu Pavilion )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임대정은 16세기 후반 고반 남언기(考槃 南彦紀)가 조성한 고반원(考槃園)의 수륜대(垂綸臺) 옛 터에 철종 13년(1862) 사애 민주현(1808∼1882)이 만든 정자이다. 임대란 이름은 송나라 시인 증극(曾極, 1019∼1083)이 지은 시 「염계(濂溪)」의 ‘새벽 물가에서 여산을 마주하네(終朝臨水對廬山)’라는 구절에서 취한 글이라 한다. 임대정은 본래 한 칸자리 초정(草亭)이었으나 시간이 지나 허물어지자, 민주현의 손자 민대호(閔大鎬, 1860~1932) 등이 1922년 정자를 중수하면서 2칸을 더 짓고 기와를 올려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화순 임대정 원림은 암반 위에 지은 정자와 상지(上池) 그 뒤 186.. 2023. 7. 17.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5.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황룡리 요월정은 황룡강 북서쪽 언덕 위에 강쪽으로 남동향하여 세워져 있다. 요월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올리고 2개의 방과 마루로 되어 있다. 이 같은 평면구조로 보아 정이라기 보다는 당에 가까운 건물이다. 요월정은 1925년에 중건되었다. 강건너 옥녀봉(玉女峰)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황룡강이 흐르는 뛰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여름이면 주변의 오래묵은 소나무 숲 사이로 60여 그루의 크고 작은 배롱나무가 붉게 피어나 화려함을 연출한다. 100년생 정도로 짐작되는 배롱나무와 오래 묵은 수형이 멋들어진 소나무들은 요월정 언덕을 황룡강 위에 물들인다. 요월정 원림은 조선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金景愚. 1517~1559)가 관직에서.. 2023. 6. 30. 독수정 원림(獨守停園林) 4. 독수정원림(獨守停園林) 소쇄원에서 내려와 담양군 남면 소재지로 가면 독수정원림이 나오는데, 독수정은 고려말 충신 서은 전신민(瑞隱 全新民)의 정자이다. 전신민은 이성계에 의하여 고려가 망하자 고려조의 신하로서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고 한다. 그는 계류가 흐르는 남쪽 언덕 위에 북쪽을 향해 정자를 짓고 이백의 시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자신을 지키다가 굶어 죽었다네(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 귀절에서 독수란 이름을 가져왔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백이, 숙제의 고사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담아냈던 것이다. 또 뒤뜰에는 소나무를 심고 앞쪽에는 대나무를 심어 수절의 일념을 표현하였다. 앞면 3칸, 옆면 2칸에 가운데 한칸의 방.. 2023. 6. 30.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