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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림기행8

소쇄원(瀟灑園, 사적) 3. 소쇄원(瀟灑園, 사적) 광주광역시 충효동의 취가정에서 다시 창계천을 건너면 담양군 남면 지곡리가 되는데, 여기에 소쇄원이 자리잡고 있다. 별뫼라고도 불리는 성산의 자그마한 계곡에 감춰놓은 듯 자리잡은 소쇄원은 우리 조상의 자연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나직하게 속삭여 주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인 소쇄옹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화순군 능주면의 적려유허지(謫廬遺墟地)에서 사약을 받고 억울한 죽임을 당하자,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며 평생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후진을 양성하였고 그러는 동안 주위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소쇄원을 가꾸어 놓았다. 그래서 소쇄원의.. 2023. 6. 30.
식영정(息影亭)과 서하당 정원(棲霞堂庭苑) 2. 식영정(息影亭, 지방기념물)과 서하당 정원(棲霞堂庭苑) 광주호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구불구불 위쪽으로 향해 가면 서하당 정원 옆의 높은 언덕배기에 식영정이 그림처럼 앉았는데, 그 이름이 ‘그림자도 머무는 정자’라는 뜻이니 이름조차 그림 같다. 그러나 식영의 의미는 장자의 글에서 청렴과 맑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식영정이 앉아있는 산줄기의 이름이 별뫼, 즉 성산(星山)이므로 정철선생의 성산별곡이 이곳에서 태어났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하당의 주인인 서하당 김성원(金成遠 : 1525-1597)이 장인어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 1496-1568)을 위해 만든 식영정은 광주호와 무등산을 바라다보며 별뫼의 혈이 뭉쳐진 자리에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까지 거느리고 있어 여러 정자들 중 가장 빼어.. 2023. 6. 30.
명옥헌 원림(鳴玉軒園林) 1. 명옥헌원림(鳴玉軒園林, 시도기념물) 명옥헌원림은 송강정에서 광주 쪽으로 달리다 고서면 소재지를 향해 방향을 바꾼 다음 88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의 밑을 차례로 빠져 나와야 한다. 고서면 소재지에서 창평 쪽으로 가면 후산마을 입구가 나오며 이 길로 꺽어져 좁은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 마을의 마지막 산자락에 이르러야 명옥헌원림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담양군 고서면 후산리에 위치한 이 원림은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오희도(吳希道 : 1583~1624)를 기리고 자신의 은거처로 삼기 위해 아들인 오이정(吳以井 : 1619-1655)이 만들었다는 원림이다. 오희도는 인조가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기 전에 이곳 후산마을로 직접 찾아와 힘을 합쳐달라고 했다는 일화를 가질 만큼 세력과 명망을 지닌 대단.. 2023. 6. 30.
원림과 원림에 깃든 정신세계 원림과 원림에 깃든 정신세계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의 조그마한 계곡에는 조선시대 별서정원(別墅庭園)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소쇄원(瀟灑園)이 풀잎에 아침이슬 맺히듯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함께 그저 있는 듯, 혹은 그냥 자연 그대로인 듯 소박하고 단정한 몸가짐으로 다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것은 자연을 은자(隱者)의 이상을 담은 극히 절제되고 거스름 없는 손길로 살짝 어루만지듯 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의 볕에 부는 청량한 바람과 맑은 날의 달빛과 같다.'는 뜻을 지닌 소쇄원을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는 그의 소쇄원 48영 중 제4 영 부산오암(負山鼇巖)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등에 여러 겹의 청산을 지고 푸른 옥빛 시내로 고개를 돌렸네.. 2023.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