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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동구)18

허백련과 춘설헌(許百鍊과 春雪軒, 기념물 제5호) 허백련과 춘설헌(許百鍊과 春雪軒, 기념물 제5호) 광주 동구 증심사길 150-21(운림동) 춘설헌은 한국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이 해방 직후인 1946년부터 1977년까지 30년간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던 곳이다. 허백련은 조선 후기 한국 남종화를 완성했던 허련의 후손으로,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서 그림의 기본을 익히고, 일본과 서울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1938년 전라도 광주에 정착하여 활동하면서 연진회를 발족하여, 전통서화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고,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지도자를 육성하였다. 또 일본인이 버리고 떠난 무등산의 차밭을 인수해 춘설다원을 경영하면서, 전통차의 재배와 보급에 힘썼다. 춘설헌은 1950년에 종래의 낡은 집을 헐고 벽돌로 새로 지은 건물로 마루에는 춘설헌이라는 현판.. 2023. 6. 12.
화담사(花潭祠, 기념물 제18호) 화담사(花潭祠, 기념물 제18호) 광주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 정희(鄭熙, 생몰년 미상)는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지신사(知申事) 곽추(郭樞)가 주관한 과거에서 급제하여 1389년(공양왕 1) 장령이 되었다. 1391년 사헌집의가 되었으며, 이 때 이염(李恬)이 술에 취하여 왕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데 대하여 국문하였다. 1392년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될 때 조준(趙浚) 등을 탄핵하다가 유배당하였다. 정희(鄭熙)선생을 중앙에 모시고 좌우에 그의 아들 정초, 손자 정수충과 정오도, 민제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처음에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사경과 예법에 뛰어나고 청렴결백한 정수충(鄭守忠, 1401∼1460)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었으나, 정조 8년(1784) 그의 위패를 함께.. 2023. 6. 10.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 전남여고(光州學生獨立運動 發祥地 - 全南女高, 기념물 제26호)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 전남여고(光州學生獨立運動 發祥地 - 全南女高, 기념물 제26호) 광주광역시 동구 무등로389번길 8(장동 )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였던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부지 일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광주여고보는 동구 장동에 위치한 전남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의 학교 본관이 당시의 건물이다. 광주여고보는 1927년에 개교하여 이듬해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인 본관 건물로 이주하였고, 학생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비’가 1959. 1. 13일에 건립되었다. 2023. 6. 9.
화류 소목장(樺榴小木匠, 무형문화재 제13호) 화류 소목장(樺榴小木匠, 무형문화재 제13호) 광주 동구 소태길 129(소태동) 소목장(小木匠)이란 건물의 문, 창문이라든가 장롱, 궤, 경대, 책상, 문갑 등 목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목수를 말하는 것으로 건축을 주로 하는 대목장(大木匠)에 대칭되는 말이다. 화류(樺榴)는 모과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고급가구 재료로 많이 쓰인다.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는 목장(木匠)이라고 하였으나 대목장과는 구분하였던 것 같다. 조선 전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이나 상류계층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고 종류도 많아져 지역적인 특성이 현저히 나타나게 되었다. 현재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조기종씨는 목재로 모과나무만을 고집하며, 제작기법은 통가구에 연귀짜.. 2023.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