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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광산구)24

호은정(湖隱亭) 호은정(湖隱亭) 광산구 본량동 본촌마을 초겨울 만추(滿秋)가 드리워진 산과 들에는 무거운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그 사이에 푸른색이 배접한 시야가 나그네를 너그러이 맞이한다. 멀리 민가에서는 흰 수염같은 연기가 피어올라 정겨운의 분위기를 보태고 있었다. 어느 집 감나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 끝에서 턱걸이를 하면서 가을에 떠나지 못해 코끝이 겨울바람에 얼어 빨개졌다. 이 마을은 옛날 장본면의 「본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조 중종 때 이조정랑을 지낸 심풍공이 철산에 유배되어 나주에 와서 기거하였는데 그 아들 심광헌공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김해부사를 거쳐 이곳에 들어와 정착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알려진 아늑한 마을이다. 청송 심씨(靑松沈氏) (중)마을 공동체 남동·본촌마을은.. 2023. 6. 1.
취병 조형 유허비(翠屛 趙珩 遺墟碑, 유형문화재 제18호) 취병 조형 유허비(翠屛 趙珩 遺墟碑, 유형문화재 제18호) 광주 광산구 비아안길 23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 내에 있다. 비(碑)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碑)의 지붕과 몸체[碑身]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 높이 95cm, 너비 120cm,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字)로 음각문(陰刻文)이다.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顯宗) 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군헌(君獻), 호(號)는 충정(忠貞)이며 본관(本貫)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 8년) 명경관(明經科)에 급제하여 사국(史局)에 재임할 때 허목(許穆)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扶餘)에 귀양 갔다.. 2023. 6. 1.
호가정(浩歌亭, 문화재자료 제14호) 호가정(浩歌亭, 문화재자료 제14호) 광주 광산구 동곡분토길 195(본덕동) 조선의 선비 설강 류사가 호가소서(浩歌小序)에서 말하기를 "왼쪽의 추월산(秋月山)과 오른쪽의 월출산(月出山), 동쪽의 서석산(무등산),서쪽의 금성(錦城)이 이곳을 중심으로 둘러있고 또 수백리를 연이은 평평한 호수, 산 언덕을 에워싼 푸른 솔, 강가에 널려 있는 맑은 모래, 고기 잡는 어부들의 노래가락 등이 흥겹게 들려온다"하였다. 그곳의 경치는 한번 찾은 사람은 누구라도 잊지 못 할 만큼 빼어난 곳이였다. 그래서 입에서 맴도는 노래가 아닌 큰소리로 불렀다는 큰소리 浩로 부른 노래歌 호가정(浩歌亭)이다. 그는 이곳에서 "흐른 물 아름답고 높은 산 해맑은니/ 구름도 번쩍이고 안개도 자욱하네. 물고기 재빠르고 나는 새 즐겨하니/ 버들.. 2023. 6. 1.
풍영정(風詠亭, 문화재자료 제4호) 풍영정(風詠亭, 문화재자료 제4호) 광주 광산구 풍영정길 21(신창동) 풍영정은 광산구 광신대교 아래로 흐르는 극락강변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강물도 맑지 않고 유속도 느린 데다 난 개발로 인한 주변지역의 경치 훼손으로 당시의 운치를 만끽할 수는 없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있으면, 시수가 저절로 떠오를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이다. 여름이면 강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시원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주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어 마치 절해고도를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풍영정은 조선조 명종 때 승문원 판교를 지낸 칠계 김언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칠계란 지금의 극락강의 옛 이름이다. 김언거는 고향의 강 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를 칠계라 지은 것이다. 사람은 자연을 쫓고 자연.. 2023.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