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은정(湖隱亭)
광산구 본량동 본촌마을
초겨울 만추(滿秋)가 드리워진 산과 들에는 무거운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그 사이에 푸른색이 배접한 시야가 나그네를 너그러이 맞이한다. 멀리 민가에서는 흰 수염같은 연기가 피어올라 정겨운의 분위기를 보태고 있었다. 어느 집 감나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 끝에서 턱걸이를 하면서 가을에 떠나지 못해 코끝이 겨울바람에 얼어 빨개졌다.
이 마을은 옛날 장본면의 「본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조 중종 때 이조정랑을 지낸 심풍공이 철산에 유배되어 나주에 와서 기거하였는데 그 아들 심광헌공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김해부사를 거쳐 이곳에 들어와 정착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알려진 아늑한 마을이다. 청송 심씨(靑松沈氏) (중)마을 공동체 남동·본촌마을은 50여호의 가구 중 2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청송 심씨들로 구성돼 있어 단일 성씨가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동족마을이다. 호은정은 광산구청에서 영광방향으로 10분정도 가다가 삼도교를 거쳐 본량서부도로를 타고 3분정도 가면 은자의 터 호은정(湖隱亭)이 위치한 본촌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마른 풀 향기 그윽한 어느 해질녘 홀로 찬바람 불어오는 산자락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 입구에 작은 정자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호은정(湖隱亭)이라는 근대 1930년에 지방 향리인 심원하(沈遠河)가 만년에 유유자적의 휴양의 목적으로 지었다는 정자였다.
이곳에서 관암 유상열이 지은 시에 정자를 지은 의미가 남아 있었다.
호산 위에 몸을 숨겨 칠십춘이 되었는데
천석 위에 지은 정자 그 모습이 새롭도다
자손 위해 남긴 유업 이 늙은이 제일이요
뜻에 의해 이룬 사업이 사람을 보았도다.
독실하는 그의 행동 많은 선비 칭찬하고
일생동안 힘을 모아 그의 몸을 지켰도다
매화나무 벗을 삼아 성심으로 좋아하니
교자같은 높은 유풍 평탄하여 솔진하네.
호은(湖隱)은 심원하(沈遠河)의 호이며 호수의 물가에서 숨어 산다는 은거호상(隱居湖上)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작지만 정자가 갖는 상징성은 다 지니고 있다. 정원수에 둘러진 계단식 논 가장위에 자리한 호은정에 앉아 있으면 근처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물의 확인이 가능하다.농로길 사이로 작은 냇물이 흐르고 호은정의 원운에는 심노옥(沈魯玉)의 70세 인생회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물가 위에 숨어 산지 몇 년의 봄을 지났는고 / 칠십되는 늙은 나이 흰 머리만 새롭도다.
문(文)도 무(武)도 없어 쓸모없는 우수되고 / 고기잡고 나무하는 한갖 사람 되었도다.
묘(妙)한 약제(藥劑) 만들어서 티글 풍속 다스리고 / 뜬 이름을 멀리하니 이 한 몸이 가볍도다.
요즈음의 모든 일이 뉘우침이 많아지니 / 작시금비(昨是今非) 깨달아서 참 이치를 찾았도다.
70세 나이 호칭을 古稀(고희)라고도 하지만 從心(종심)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뜻대로 행하여도 어긋나지 않을 나이'를 의미한다. 심노옥이 70세 지은 시로 나이에 걸맞는 심정을 잘 드러나고 있다. 정자는 도리 석초했으며 기둥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한칸에 방을 둔 중재실(中齋室)을 갖추었고 평기와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었다. 호은정의 대서는 이 마을의 주봉 심한구(沈翰求, 1898∼1974) 와 6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 들린 소천 유인원도 정자주인의 심정을 위로하며 시를 남겼다.
뭉쳐 있는 화한 기운 사시 장철 봄 같으니 /오늘날의 남은 경사가 한이 없이 새롭도다
기다리는 계산 위에 한 띠집을 이루었고/끝이 없는 풍월 속에 좋은 주인 되었도다.
나의 성명 보전하며 분수대로 살아가고/헛된 이름 멀리하여 그의 몸을 닦았도다.
선원이라 하는 것이 별계의 땅 아니거늘/무엇하려 봉도에서 참된 이치 찾을손가,
또 명곡 김수택은 심원하(沈遠河)의 은거를 은근히 부러워하며 그 여운을 남긴다.
이 정자를 지은지가 몇년 봄을 지났는고/산과 물의 맑은 정기 곱절이나 새롭도다.
어진 이웃 가리려고 좋은 명지 점거하고/이 정자를 지으면서 주인에게 물었도다.
계수나무 가을 바람 초은뜻이 굳어있고/강호위의 연기 달빛 한간 몸이 늙었도다
몸을 숨긴 늦은 만절 이곳에서 장수하니/무엇하려 신선 땅의 태을진을 부러할고.
이곳의 앞마을 남동마을은 청송 심씨의 집성촌으로, 마을 입구에 남동영각(남동사)과 함께 만취정(晩翠亭)과 동호사(東湖祠)가 나란히 서 있고, 기묘명현으로 남종화의 시조라고 부르는 묵죽도를 그린 교리 양팽손(梁彭孫)의 둘째 아들이었던 찬란한 문체로 유명한 조선 중기 명종과 선조 시대의 문신의 송천 양응정의 묘가 지리하고 있다. 호은정 앞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초야의 한 선비가 흘려보낸 깊이만큼 하염없는 흐르는 정막, 한 생애 앞곡 굽이 어드메쯤에서 멈췄을까? 호은정의 열가지 경치는 개발로 사라졌지만 이산 고광열의 시에는 그윽한 풍치를 품으며 남아 있다.
늙은 옥용 서로 간후 아직까지 아니오나/구림안의 푸른 수풀 봄 기운이 찾아왔네.
불어오는 동쪽 바람 가는 비를 몰아오니/가랑비에 젖은 나무 푸른 빛이 쌓였도다.<구림의 봄비>
어지러운 북풍소리 추운 겨울 돌아오니/검은 구름 발묵하여 일천 산이 어둡도다. 밤 사이에 내린 눈이 송정위에 쌓였는데/노를 저은 어느 사람 달을 보고 돌아오네.<송정의 쌓인 눈>
목동들의 피리 소리 언덕위에 들려오니/정정하는 붉은 해가 서쪽 산에 걸렸도다. 높이 솟은 산봉위에 비껴있는 저녁 노을/걸쳐 있는 그 자세로 그 머리를 숙였도다 <원봉의 석조>
깊은 못의 푸른 빛이 하늘위에 잠겻는데/하얀 이슬 푸른 갈대 맑은 재색 연했또다. 호수위에 가을 달이 그 그림자 단단하니/반짝이는 그의 광채 비귀비선 분명하네.<평평한 호수위에 비친 가을 달>
바닷가의 산봉우리 옥잠처럼 꽂혔는데/절 모습이 안 보이니 흰 구름이 깊었도다. 새벽 달을 두들기는 맑은 조엉 들려와서/부생들의 인과마음 깨우쳐서 일으키네. <갑사의 종소리>
만고호수맑은 물이 한이 없이 흘러가니/죽서라는 적은 섬이 한 가운데 떠 있도다. 연기 깨인 물결위에 돛대 달고 노저으니/너 혼자서 오고 가는 그 모습이 그립도다 <죽서에 떠있는 먼 배>
우장옷을 굴러쓰고 석탄위로 내려오니/복숭아꽃 늙어 있고 버들 꽃이 피어나네. 물결치며 노는 고기 셀 수 없이 무수하니/자연 이치 감상하려 막대 짚고 보았도다.<향포의 물가에서 고기>
계산나무 산 언덕에 흰 구름이 머무르니/신선 사는 바위 위에 한 태손이 나렸도다. 우렁차게 우는 곳에 하늘바람 일어나서/남은 여음 멀리보내 나의 귀에 들려오네<선암의 학 소리>
죽순처럼 솟은 돌이 푸른 산에 꽂혔는데/어둠속의 하얀 비가 나의 얼굴 적셔주네. 마전하는 흰 배처럼 잠간사이 변화하며/바위가와 나무 사위 두곳으로 나눠지네<월악의 갠 아지랑이>
구풍바람 세게불어 바다 귀신이 몰아치니/이 없는 창파속에 대지땅이 흔들이네. 용포어구 조수 물결 돌아갔다 다시오니/은산처럼 높은 물결 눈빛처럼 흘러가네< 용포의 늦은 조수>
석양의 해가 무겁게 떨어지고 있다. 대로변으로 가는 길에 이름없는 무덤은 잡풀로 매섭게 일어섰다. 이런 날이면 김춘수님의 가을 저녁의 시가 생각난다.
누가 죽어가나보다/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반만 뜬 채/이 저녁/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호젓한 논두렁을 걸어도 개짓는 소리는 않들리고 누구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도 겨울바람조차 미웁지 않고 정답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 많은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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