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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광산구)

취병 조형 유허비(翠屛 趙珩 遺墟碑, 유형문화재 제18호)

by 햇살과 뜨락 2023. 6. 1.

취병 조형 유허비(翠屛 趙珩 遺墟碑, 유형문화재 제18호)

광주 광산구 비아안길 23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 내에 있다. 비(碑)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碑)의 지붕과 몸체[碑身]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 높이 95cm, 너비 120cm,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字)로 음각문(陰刻文)이다.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顯宗) 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군헌(君獻), 호(號)는 충정(忠貞)이며 본관(本貫)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 8년) 명경관(明經科)에 급제하여 사국(史局)에 재임할 때 허목(許穆)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扶餘)에 귀양 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通信上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楊洲)에 추방되었다. 현재 하남의 안청동에는 풍양조 씨는 살고 있지 않으며 조형선생의 후손은 없고 경기도에 친인척이 있다고 하지만 유허비는 방치되어 왔다. 11개월간의 일본여행을 마친 후 기록한『부상일기(扶桑日記)』는 17세기 한일관계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광주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광주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 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地方史 硏究), 금석학(金石學)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