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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기행29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2023. 9. 17.
백호 임제(白毫 臨際, 1549 -1587)勿哭辭 임제 백호(1549 -1587) 백호 임제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선시대 풍류객이다. 아니 풍류객이라 해도 좋을 듯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35세 때 평안도사(종 6품)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송도(지금의 개성)의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올리고 제를 지내며 추도시를 읊었다 하여 조정으로부터 파직을 당한 로맨티시스트가 바로 백호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 가 누웠는가. 홍안을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시조를 양반 신분에 기생의 무덤 앞에서 예를 갖추고 읊었으니 그 자유분방함이 가히 풍류객답다. 그녀가 15세 때 이웃에 사는 어느 서생이 그녀를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었는데 상여가 황진이집 앞에.. 2023. 9. 4.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1529~1590)과 자산서원(紫山書院) 곤재 정개청 (困齋 鄭介淸,1529~1590)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困齋). 아버지는 세웅(世雄)이다. 어려서 중이 되어 보성의 영주산사(瀛州山寺)에 들어가 풍수설과 성리학, 지리, 의약, 복서 등을 배웠다. 그뒤 박순(朴淳)에게 10여 년을 배우고 1574년(선조 7) 전라감사 박민헌(朴民獻)의 천거로 1585년 교정청낭관을 거쳐 영릉참봉·나주훈도·전생서주부·곡성현감을 지냈다. 서인인 영의정 박순이 파직되자 동인인 정여립(鄭汝立)·이발(李潑) 등과 친교를 맺었다. 1589년 〈절의청담변 節義淸談辨〉을 지어 자신의 처지를 변명했으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절의론(排節義論)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1590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었고 함경도.. 2023. 9. 1.
설재 정가신과 설재서원, 쌍계정 설재서원(雪齋書院,문화재자료) 전남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649 설재서원은 문정공 설재 정가신(雪齋 鄭可臣)을 배향하기 위하여 숙종14년(1688) 노안면 금안동에 최초로 창건되어 현재는 9위를 향사하고 있다. 숙종 19년(1693) 설재 선생의 5세 손으로 세종조에 효자정려를 받은 경무공 영모정 정식(鄭軾·1407~1467년)이 추배되었다. 숙종 38년(1712) 여름에는 향사우로 승격되어 설재서원이 되었다. 경종 3년(1723)에 노안면 금안동에서 영평리 영안마을로 이건하여 강당인 영모재를 건립하고, 암헌(岩軒) 신장(申檣·1381~1433)과 후손인 일헌(逸軒) 정심(鄭諶·1520~1602년)을 추배하여 4위가 배향되었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훼철되었다가 1900년 .. 2023.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