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기행29 눌재 박상(訥齋 朴祥, 1474∼1530)과 송호영당 송호영당 (松湖影堂) 광산구 소촌동 산 85 박상선생과 조카되는 박순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1728년 후손들에 의해 박상선생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세워졌다 없어지고 1995부터 1998년에 걸쳐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골기와 맞배지붕 구조로, 건물 중앙은 영정 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용아 박용아 생가 주변에 있는 이 영당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효자각 등이 있다. 눌재집 목판각(訥齋集 木版刻, 유형문화재 제16호) 『눌재집』의 초간본은 1547년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에 의해 금산에서 7권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1694년과 1795년의 다시 간행하면서 속집이 추가되었으며, 1841년에는 앞의 판본이 소실되는 변고가.. 2023. 5. 30. 동암 이발(東巖 李潑, 1544-1589)과 동암기행 필문 이선제 부조묘와 괘고정수(畢門 李先齊 不祧廟와 掛鼓亭樹, 지방민속자료 제7호, 기념물 제24호)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조선 초의 문신인 필문 이선제(畢門 李先齊, 1389-1454) 선생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부조묘란 나라에 특별한 공훈을 세운 사람을 기리어 그 신주를 영원히 모시도록 하는 사당을 말하는데 여기 모신 분을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한다. 보통 4대가 지나면 위패를 땅에 묻고 제를 지내지 않게 되어 있는데, 이 경우는 4대 봉사가 끝난 후에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으며 계속적으로 후손들에게 기제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며 앞마루를 둔 소박한 맞배집으로 본래 있던 자리에서 50여 m 가량 왼쪽으로 옮겨왔다. 이선제는 광주 대촌에서 부제학 일영(日英.. 2023. 5. 30.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 1529-1590)과 자산서원(紫山書院) 자산서원(紫山書院)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엄다리 제동마을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 1529-1590)선생은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자산서원은 1616년 제자들이 스승의 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세운 서원이다. 1678년 조정으로부터 자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나 계속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훼철과 복설(復說)을 되풀이하였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5차례의 훼철을 당하였고 1957년에 복설된 뒤 1988년 대규모의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유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된 정개청 문집 『곤재 우득록(困齋 愚得綠)』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곤재우득록목판(困齋愚得綠木版, 유형문화재 제146호) 자산서원에 보관된 정개청 문집의 목.. 2023. 5. 30.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1513-1577)과 미암일기 미암일기(眉巖日記, 보물)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이 책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유희춘선생의 친필일기이다. 지금 남아있는 일기는 선조 즉위년인 1567년 10월 1일부터 시작해서 1577년 5월 13일까지 대략 11년간의 일기인데 중간에 몇 군데 빠진 데가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개인의 일기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이며 사료로서의 가치도 대단하다. 일기에 본인의 일상생활에 일어난 모든 일을 상세히 적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당시 상류층 학자들의 생활상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본인이 중앙의 요직에 있었던 만큼 선조 초년에 조정에서 일어난 사건은 물론 경외(京外)의 각 관서의 기능과 관리들의 내면생활 및 사회, 경제, 문화, 풍속 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선조 25년 이전의 『.. 2023. 5. 30.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