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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기행

눌재 박상(訥齋 朴祥, 1474∼1530)과 송호영당

by 햇살과 뜨락 2023. 5. 30.

송호영당 (松湖影堂)

광산구 소촌동 산 85

  박상선생과 조카되는 박순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1728년 후손들에 의해 박상선생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세워졌다 없어지고 1995부터 1998년에 걸쳐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골기와 맞배지붕 구조로, 건물 중앙은 영정 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용아 박용아 생가 주변에 있는 이 영당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효자각 등이 있다.

  

눌재집 목판각(訥齋集 木版刻, 유형문화재 제16호)

  『눌재집』의 초간본은 1547년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에 의해 금산에서 7권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1694년과 1795년의 다시 간행하면서 속집이 추가되었으며, 1841년에는 앞의 판본이 소실되는 변고가 있어 그 2년 뒤에 다시 광주목사 조철영(趙徹永)이 중간하였다.

  현존하는 『눌재집』의 목판각은 1판 2면의 양면판으로, 수량은 모두 370매이다. 크기는 가로 34cm, 세로 20cm, 두께 4cm 내외로 일정하지 않다. 광주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눌재 박상(訥齋 朴祥, 1474∼1530)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이다. 1501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교서관정자를 시작으로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 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사간원헌납 때, 종친들의 중용을 반대하다가 하옥되기도 했다. 종묘서영(宗廟署令), 임피현령, 수찬, 응교, 담양부사 등을 역임했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소로 인해 오림역에 유배되기도 했다. 1516년 방면되어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장악첨정(掌樂僉正), 순천부사, 선공감정(繕工監正), 충주목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했다가 1529년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청백리였으며 성현(成俔), 신광한(申光漢), 황정욱(黃廷彧) 등과 함께 서거정(徐居正)이후 4가(四家)로 칭송될 정도로 시문이 뛰어났다. 저서로는 『눌재집』이 있고 1688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월봉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