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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기행29

사계(沙溪)기행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遁岩書院, 사적 제383호)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외 5필지 돈암서원은 논산시내에서 연산면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따라 부적면을 지나 연산면소재지 못 미쳐, 오른 쪽으로 300m 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이 서원은 감싸고 있는 뒷산이 나직하고 널직한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탓인지 느낌이 색다르다. 건물 배치도 일반적인 서원과는 다르다. 산앙루(山仰樓)를 지나 나직한 담장을 두른 소박한 대문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돈암서원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뒷면에 입덕문(入德門)이라는 현판이 있어 대문 이름을 알게해 준다. 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마당이 나타나는데, 이 마당 정면에 강당인 양성당이 동재와 서재를 거느리고 뒤편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인 것이다. 하지만 보통 서.. 2023. 5. 25.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는 김장생은 광산 김씨로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을 역임한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에게 배웠고 장성하여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에게 사사했다. 벼슬길을 멀리하다가 1578년에야 창릉참봉에 천거되었다. 1581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일로 명나라 사행(使行)을 가는 아버지를 수행한 뒤, 돈녕부참봉이 되었다. 이어 순릉참봉·평시서봉사(平市署奉事)·동몽교관·통례원인의를 거쳐 1591년 정산현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호조정랑·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으로서 군량 조달에 공을 세웠다. 그뒤 남양부사·안성군수를 거쳐 1600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가 되었다. 1602년에 청백리에 뽑히고 이듬해 익산.. 2023. 5. 25.
한훤당(寒暄堂) 기행 현풍곽씨 십이정려각(玄風郭氏十二旌閭閣, 문화재자료 제29호) 대구 달성군 현풍면 지리 1348-2 솔례촌이란 이름의 마을입구에 서있는 이 정려각은 임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장군을 배출한 현풍 곽씨 집안의 정려비들을 모신 곳이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를 그들이 살던 고향에 정문(旌門)을 세워 기리는 것을 말한다.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충신 1명, 효자 9명, 열부 6명 등 16명의 충신과 효자, 열부를 모신 곳이다. 지금은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나라에서 포상을 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 2023. 5. 25.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1454-1504) 김굉필선생은 퇴계 이황으로부터 ‘도학(道學)의 으뜸 스승’이라는 뜻의 근세도학지종(近世道學之宗)으로 칭송받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다. 광해군 2년(1610년) 문묘(文廟)에 제향되었고 동국 5현(東國 五賢)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분이다.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고려 후기에 사족으로 성장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조참의를 지낸 증조부가 현풍 곽씨와 결혼해 처가인 현풍으로 내려오면서부터 현풍과 인연을 맺었다. 할아버지가 개국공신인 조반의 사위가 되어 서울 정동에 살게 되었는데, 선생은 여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충좌위사용(忠佐衛司勇)이란 무관을 지냈던 김유(金紐)였다. 어렸을 때부터 호방하고 거리낌 없는 성격으로 저잣거리에서 잘못된 것을 보면 그 자리에서 메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살에 순천 박씨와 .. 2023.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