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문화재 (광산구)24 입석마을 선돌(立石마을 선돌, 민속자료 제5호) 입석마을 입석(立石마을 立石, 민속자료 제5호) 광주 광산구 본량입석길 246(산수동) 입석마을은 황룡강 유역의 들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입석(선돌)은 마을 가운데 오형열의 집 마당에 서 있어 다른 선돌들과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선돌은 들 가운데나 마을 입구, 고인돌 옆 등에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김새는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편인데 특히 위는 32cm, 아래는 40cm인 중앙부분은 인공으로 다듬어 4등분하여 가로 줄을 새겼다. 이 가운데 1·3단은 정사각형, 2·4단은 직사각형으로 다듬고 있어 돌을 인위적으로 다듬었음을 알 수 있다. 선돌의 아래 부분에는 선돌을 세울 때 이 부분을 보강하기 위하여 깊이 1 ~ 1.5m의 두께로 흙과 깬돌(割石)을 섞어 내부를 다졌다. 돌의 .. 2023. 6. 1. 월계동 장고분(月桂洞 長鼓墳, 기념물 제20호) 월계동 장고분(月桂洞 長鼓墳, 기념물 제20호) 광주 광산구 월계로 155(월계동) 월계동 장고분은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첨단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월계동 장고분은 영산강 상류의 충적평야를 낀 낮은 구릉지대의 장구촌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월계동 장고분 역시 다른 장고분과 그 형태가 비슷하다. 월계동에는 2기의 장고분이 꼬리를 물고 잇닿아 있는 형국인데, 앞쪽 1호 고분이 뒤쪽 2호 고분보다 조금 더 크다. 1호 고분은 일제강점기 때 도굴되면서 훼손되어 복원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 고분 안으로 드나드는 문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복원된 봉분의 전체 길이는 45.3미터이며 높이는 2.8미터에서 6.1미터이다. 분구 주위에 도랑이나 연못을 파 놓은 주호의 너비는 14.2미터에서 5.5미터이며, .. 2023. 6. 1. 용진정사(湧珍精舍, 문화재자료 제7호) 용진정사(湧珍精舍, 문화재자료 제7호) 광주 광산구 왕동 산3 한말의 도학자 후석 오준선(後石 吳駿先, 1851∼1931)이 강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오준선은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항규에게 입양되었다. 18세부터는 노사 기정진에게 배우며 학문의 폭을 넓혔으며, 일제의 회유정책에도 굽히지 않고 1917년에 용진산에 들어가 생을 마칠 때까지 후학을 가르쳤다. 용진정사는 원래 용진사라는 절이 있던 곳인데 삼봉 정도전, 우암 송시열등이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진다. 절이 허물어 진 뒤 정안 이씨가 그 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 오준선의 뜻을 전해 듣고 절터의 일부를 내주어 건물을 짓게 되었다. 오준선이 죽은 뒤 문인들이 강당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 2023. 6. 1. 용진산 마애여래좌상(聳珍山 磨崖如來坐像, 문화재자료 제11호) 용진산 마애여래좌상(聳珍山 磨崖如來坐像, 문화재자료 제11호) 광주 광산구 사호동 산136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용진산의 청룡사 가는 길 왼편 암벽에 새겨져 있는 높이 1.17m의 마애불이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마련하지 않고 불신만을 선으로 새겨 놓았다. 타원형의 얼굴은 평면적이며 가늘게 뜬 눈과 눈썹 사이가 좁아서 찡그린 인상을 주고 있다. 코는 얼굴에 비해 크고 넓은데, 끝이 파손된 상태이다. 입은 큰 편이고 꽉 다문 입술은 두텁게, 표현하였다. 목은 바로 어깨에 맞닿아 있어 움츠리고 있는 듯하다. 옷은 왼쪽 어깨에 희미하게 나타나 있을 뿐 거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양 손을 가슴에 모아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맞대고 있는 손 모양으로 보아 아미타여래를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양 발을 .. 2023. 6. 1.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