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림기행

식영정(息影亭)과 서하당 정원(棲霞堂庭苑)

by 햇살과 뜨락 2023. 6. 30.

2. 식영정(息影亭, 지방기념물)과 서하당 정원(棲霞堂庭苑)

 

  광주호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구불구불 위쪽으로 향해 가면 서하당 정원 옆의 높은 언덕배기에 식영정이 그림처럼 앉았는데, 그 이름이 ‘그림자도 머무는 정자’라는 뜻이니 이름조차 그림 같다. 그러나 식영의 의미는 장자의 글에서 청렴과 맑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식영정이 앉아있는 산줄기의 이름이 별뫼, 즉 성산(星山)이므로 정철선생의 성산별곡이 이곳에서 태어났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하당의 주인인 서하당 김성원(金成遠 : 1525-1597)이 장인어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 1496-1568)을 위해 만든 식영정은 광주호와 무등산을 바라다보며 별뫼의 혈이 뭉쳐진 자리에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까지 거느리고 있어 여러 정자들 중 가장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다.

  광주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정자의 앞으로 자미탄(紫薇灘)이라는 별칭의 창계천이 휘돌아 들고 여름이면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워 여울을 적시고 있었을 것이어서 그 모습을 상상하면 식영정 주변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더구나 정자마루에서 바라다보는 구름 쌓인 무등산의 신비로움까지 더하면 선경이 따로 없다 할 것이다. 더구나 석천 임억령은 시가문학에 뛰어난 분이었으니 이 정자의 주인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함께 한다.

  이 정자의 입구에는 한 쌍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었는데, 몇 해 전에 한 그루가 그만 벼락을 맞아 지금은 외롭게 한 그루만 남아 있다. 비록 한 그루만 남아 있지만 우리 소나무인 적송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 자태는 여전하다. 문화재의 보호란 그 자체만을 보호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으며 주변의 자연환경까지 함께 보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식영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작은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붙이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하였는데, 이곳의 지형에 알맞게 규모를 줄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한가롭구나, 서석 산마루에 저 구름,

잠깐 날리더니 걷히어 숨네.

운유 즐기던 길손 그 누구인고.

보고 서로 또 보아도 싫지가 않네.

임억령 식영정 이십 영(息影亭 二十詠) 가운데서

 

어떤 길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생 세간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좋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소나무 밑을 다시 쓸고 죽상(竹床)에 자리 보아

잠시 올라앉아 어떤가 다시 보니.

하늘가에 뜬구름 서석을 집 삼아

나가 듯 드는 모습 주인과 어떠한고

창계 흰 물결이 정자 앞을 둘렀으니.

천손 원금 (직녀성과 은하수를 가리킴)을 그 뉘가 베어내어

잇는 듯 펼쳐 놓은 듯 경치도 호화롭네.

산중에 책력 없어 사시를 모르더니

눈 아래 펼친 경치 철따라 절로 나니

듣거니 보거니 일마다 선경일세.

정철 성산별곡(星山別曲) 가운데서

  식영정 아래편의 서하당정원은 김성원이 꾸민 정원으로 부용당과 서하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과거의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새로 지은 건물과 송강선생을 기리는 모딜리스크 흉내를 낸 비석으로 인해 그나마 예스러움이 많이 손상되었다. 서하당은 정철과 짝을 이룰 만큼 학문과 문학적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고 하며, 거문고 타는 솜씨가 좋아 성산별곡의 한 구절에 등장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정유재란 때 늙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에서 부인과 함께 왜적에게 대항하다 돌아가셨으니 그 효성의 지극함이 하늘을 감동시킬 정도였다 한다.

'원림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1) 2023.06.30
독수정 원림(獨守停園林)  (0) 2023.06.30
소쇄원(瀟灑園, 사적)  (1) 2023.06.30
명옥헌 원림(鳴玉軒園林)  (0) 2023.06.30
원림과 원림에 깃든 정신세계  (1) 2023.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