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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당 송흠과 관수정(知止堂 宋欽,1459-1547과 觀水亭) 관수정(觀水亭, 문화재자료)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 1539년에 건립한 관수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지지당 송흠선생의 정자로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변에 천방사와 용암천이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정자의 내부에는 당시대 친우인 홍언필, 전안국, 성세창, 신광헌, 김인후, 임억령 등의 제영(題詠)이 다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인 골기와의 팔작지붕 건물로 겹처마를 돌렸다. 한편 관수정 옆을 흐르는 용암천 바로 건너편에는 기영정(耆英亭)이 있다. 기영정은 전라도 관찰사 송인수(宋麟壽, 1487-1547)가 1543년에 중종의 명을 받아 지었다. 기(耆)라 함은 ‘나이가 많고 덕이 높다(年高德厚)’ 는 뜻인데, 나이가 70이 되면 기(耆), 80이 되면 노(老)라 한다.. 2023. 8. 28.
고려불화(高麗佛畵) 머리글 고려불화는 우리나라의 불교미술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작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대와 중세회화를 살피는 데 있어서도 빼놓을 없는 회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고분벽화 이후 고려시대까지 몇 작품 전해지지 않는 일반회화와는 달리 상당량의 작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려불화는 국내외를 통틀어 120여점에 이르며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나름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력과 함께 우리 민족의 미적 감수성까지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대부분은 일본에 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작품들이 우리나라의 고려불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 고려불화.. 2023. 7. 31.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창건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에 왕과왕후의 지원으로 창건하였다.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년(1874)에 판각한 것이다. 이 「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창사정신 해인사 창건의 참뜻은 해인(海印)이라는 낱말에 응집되.. 2023. 7. 28.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僧寶宗刹 曹溪叢林 松廣寺) 조계산 송광사(曹溪山 松廣寺) 부처는 진리에 눈뜬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2600년 전 인도에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깨친 다음 우리를 위해 설하는데, 그 내용이 오늘날 팔만대장경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승가는 스님들과 신도들로 구성된 신앙공동체를 가리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승가를 통해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승되어 오고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은 진리의 길을 먼저 걸어 깨치셨던분으로 그 길을 우리들에게 친절히 가리켜 주시는 길잡이(導師)요, 가르침은 그 길을 표시하고 있는 지도나 이정표와 같고, 승가는 진리의 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보배인 삼보는 거기에서 그치지않고 더욱 내면화되어 바로 우리들이 본래부터.. 2023.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