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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기행

지지당 송흠과 관수정(知止堂 宋欽,1459-1547과 觀水亭)

by 햇살과 뜨락 2023. 8. 28.

관수정(觀水亭, 문화재자료)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

 

1539년에 건립한 관수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지지당 송흠선생의 정자로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변에 천방사와 용암천이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정자의 내부에는 당시대 친우인 홍언필, 전안국, 성세창, 신광헌, 김인후, 임억령 등의 제영(題詠)이 다수 있다. 정면 3, 측면 1칸에 전퇴인 골기와의 팔작지붕 건물로 겹처마를 돌렸다.

한편 관수정 옆을 흐르는 용암천 바로 건너편에는 기영정(耆英亭)이 있다. 기영정은 전라도 관찰사 송인수(宋麟壽, 1487-1547)1543년에 중종의 명을 받아 지었다. ()라 함은 나이가 많고 덕이 높다(年高德厚)’ 는 뜻인데, 나이가 70이 되면 기(), 80이 되면 노()라 한다. ()은 풀이나 식물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영정이란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노인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사람을 기리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지지당 송흠(知止堂 宋欽, 1459-1547)

선생은 세조 5년에 나서 89세로 사망하였는데,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흠지(欽之), 호는 지지당(知止堂), 관수정이다. 연산군때 퇴직하여 후진교육에 전심했고 중종반정 후에는 복직하여 내외의 여러 요직을 거쳤다.

영광에서 태어났으며, 1480년 사마시를 거쳐 1492년 식년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있다가 연산군 때에는 은퇴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516년 홍문관 정자에 복직하여 박사(博士), 지평(持平) 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다. 1528년에 담양부사, 1531년에 장흥부사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전주부윤으로 옮겼다. 여러 관직을 거쳐 1534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다시 노모를 위해 왕의 특허로 집으로 돌아갔다. 101세를 산 어머니에 대한 효성으로 7차례나 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효헌이란 시호를 받았다. 송흠의 묘소는 관수정 바로 뒷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