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 15길 (폐선푸른길)
‘폐선푸른길’이라 이름한 무돌 15길은 도심철도의 이설로 기능이 사라진 옛 철길의 일부를 걷는다. 철도를 이설한 후 다양한 수목을 심고 화단을 조성해 놓았으며 각종 조형물과 벽화, 의자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푸른길’이라 이름 지어진 이 길은 시민들의 휴식처이면서 자전거도로, 산책로, 문화행사 장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삭막한 도심 한복판에 자연을 벗할 수 있는 새로운 명소가 생긴 것이다. 3㎞ 남짓 되는 이 길은 광주도심의 동남쪽을 휘도는데, 남광주역사에서 시작하여 학동, 서석동, 동면동, 산수동, 계림동, 중흥동을 지나 광주역에 이른다.
남광주시장에서 왼쪽으로 조선대병원, 오른쪽으로 전남대병원을 일별하고 지하철 남광주역으로 내려간다. 남광주역 대합실, ‘지하철과 함께 하는 추억여행 전시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한 바퀴 돌면서 광주의 옛 사진들을 관람한다. 광주의 역사를 짧은 시간에 되돌아볼 수 있어 잠시 어릴 적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광주가 짧은 기간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며 전남대 병원 쪽으로 지하도를 벗어난다. 이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푸른길로 들어선다. 붉은 구슬 같은 열매를 맺은 먼나무가 눈길을 끈다. 감탕나무과의 먼나무는 사철나무, 호랑가시나무와 많이 닮았다. 눈을 이고 있는 동백나무, 호랑가시나무가 더욱 선명한 푸름을 뽐낸다. 점심 직후라 길옆 소박한 커피가게에서 따뜻한 커피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지금은 푸르름으로 시민들의 품에 안겨있지만, 푸른길을 조성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광주시의 경제성만을 앞세운 사업계획으로 시민단체와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경전선이 지나던 이 옛 철길은 1930년대 건설된 것으로 광주역에서 효천역까지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도시가 커지자 1970년대 이후, 이 철길은 시민들의 삶에 많은 불편을 주었고 1995년부터 이설공사가 시작되었다. 2000년 8월에 공사가 끝나자 총연장 7.9㎞, 폭 13m에 이르는 철길은 빈 공간으로 남았다. 광주시에서는 경전철 부지로 이용하자는 등 시민들의 생각과는 다른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광주도심철도이설부지푸른길 가꾸기 시민회의’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녹지공간이 절대 부족한 광주도심의 특성을 고려하여 푸른길 공원으로 가꾸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어 2002년 3월 ‘푸른길운동본부’로 확대 발전하면서 지금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였다.
커피가게를 나와 눈길을 걷는다. 1970년대 만들어진 8차선 제1 외곽순환도로 너머 산자락에 우뚝한 조선대학교가 눈길을 끈다. 그 너머로 무등산이 눈을 이고 있다.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외곽이었다. 지금은 민자 출연으로 제2 외곽순환도로가 완공되고 제3 외곽순환도로도 진행 중이니 광주가 많이 커졌다는 걸 실감한다. 잠시 푸른길을 벗어나 지산동 법원 근처의 백주사(栢州寺)터에 있는 지산동 오층석탑을 살핀다. 광주공원에 있는 성거사(聖居寺)터 오층석탑과 함께 동서로 광주를 지켜주는 석탑이어서 동오층석탑으로 불린다. 제법 규모와 아름다움을 갖춘 늠름한 석탑으로 신라전형양식이다.
다시 푸른길로 돌아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동명동을 지나 농장다리 아래로 향한다. 농장다리라는 이름은 다리 건너 교도소의 농장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지산동과 산수동의 산자락에는 목장도 제법 많았었다. 이곳에 있던 교도소는 1971년 북구 각화동으로 옮겨갔고 농장과 목장도 사라졌다. 농장다리 아래를 통과해 계림동 길로 접어든다. 길 양쪽 오래 묵은 집들의 담벼락에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곳은 무등산 장원봉에서 내려오는 동계천의 물길이 지나는 지대가 낮은 곳이어서 물난리가 잦았던 곳이다. 하지만 광주천으로 합류하는 동계천은 전구간이 복개되어 그 물길을 찾기 힘들어졌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들을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아직은 계림동이다. 길 왼쪽으로는 기찻길옆 오막살이란 노랫말이 생각나는 허름한 집들이 숲처럼 솟은 건너편 광주상고 옛터의 아파트들과 함께 세월을 건너뛰고 있다.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기묘한 느낌이 든다. 길가에 소파를 내어놓고 겨울햇살에 환하게 웃고 계신 할머니와 사진을 찍는다. 겨울인데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 길은 어느새 도심 속의 푸른 공간으로 소중한 삶의 휴식 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제 시민들의 힘으로 가꾸고 힘써 보존해 나가야겠다. 지금은 메워져버린 경향방죽 옛터를 지나 광주역사를 바라보며 걸음을 멈춘다.
무등산은 광주시민들에게는 축복이다. 어느 곳에서나 바라다보이고 그 듬직한 어깨를 내어 기대게 해 준다. 그 자락을 휘도는 무돌길은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이 길은 그저 소박한 길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절에 따라 적절한 길을 선택하고 주변의 문화유산을 살필 수 있도록 배려하면 잔잔한 탄성을 터트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4월 중순 벚꽃이 필 무렵부터 철쭉이 만개하는 5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은 11길인 화순길과 12길인 만년길이 생각난다. 초여름인 6월에는 8길인 영실길과 9길인 안심길이 으뜸이다. 곳곳에 찔레, 아카시, 이팝나무, 층층나무 꽃들이 하얗게 피고 향기는 바람에 실려 코끝을 상큼하게 한다.
가을이면 어느 길이나 나름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그중 6길인 백남정길과 7길인 이서길을 추천한다. 눈 쌓인 겨울에는 14길인 광주천생태길과 15길인 폐선푸른길이 제격이다. 3길인 덕령길은 짧은 길이지만 주변에 문화유산이 제법 많아 쉬엄쉬엄 살피면 한나절이 넘는 길이 되기도 한다. 4길인 금곡숲길은 충효동과 환벽당, 취가정, 소쇄원으로 휘돌아 가는 길은 선택하면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다. 끝으로 무돌길 답사글을 마치면서 무돌길을 마련해 준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의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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