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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무돌길

무돌 12길(만년길), 무돌 13길(용추길)

by 햇살과 뜨락 2023. 5. 9.

무돌 12길(만년길), 무돌 13길(용추길)

 

  만년길인 12길은 화순읍 수만리 중지마을에서 시작하여 만연재를 넘어 무성이골을 지나서 광주광역시 용연마을에 이르는 길이다. 13길인 용추길은 용연마을에서 용추계곡을 따라 제 2수원지 입구인 선교동까지 걷는 길이다. 무성이골을 넘어오는 숲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져 걷는 맛이 있지만, 용연마을에서 다리목까지는 포장도로여서 걷는 맛이 덜하다. 다만 용추계곡을 거슬러 올라 제2 수원지를 지나고 용추폭포와 광주천 발원지인 샘골까지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매력 넘치는 길이 될 것이다.

  작년엔 눈길을 걸었는데 이번엔 이른 장마가 시작된 6월 중순을 걷는다. 어제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오늘은 구름만 얕게 햇빛을 가리고 있어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12길을 시작하는 중지(中旨)마을은 수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재에서 만수마을로 향하다가 왼쪽으로 꺾어져 비포장 길을 한참 가야 했지만, 지금은 포장도로가 마을 앞까지 시원스럽게 뚫려있다. 중지마을은 가운데뜸, 즉 중마실이라 불렸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뜸을 뜻 ‘지(旨)’자로 바꾸었다 한다. 본래는 광주에 속했었다가 1914년 화순군으로 편입되었다. 이제는 가운데뜸이 아니라 웃뜸이라 해야 맞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뗀다.

  마을은 무등산을 북쪽에 두고 동쪽으로 안양산, 남서쪽으로 만연산을 두르고 있어 그야말로 깊은 산골이다. 남향으로 나직하게 앉은 마을의 초입에서 주변의 산들과 수만리의 마을들, 계곡과 구불구불한 길들을 내려다본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전망이 아름답다.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입구에는 넓은 주차시설이 있는데,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돌담길을 휘돌아 ‘너와 나 목장’을 향해 올라간다. 돌담의 담쟁이넝쿨이 잠깐 비친 6월의 햇살에 생기를 가득 머금고 반짝인다.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만연재 정상부근에 올라서니 등허리와 이마에 약간의 땀이 맺힌다. 6월의 신록이 선명하다. 만연재 정상 주변은 흑염소를 주로 키우는 목장지대여서 숲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멀리 백마능선 위로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백마능선을 오르면 장불재에 다다르고 거기서 무등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한편 중머리재를 향해 가다 용추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그러나 무돌길은 왼쪽 길을 선택하여 무성이골로 향한다.

  무성이골로 진입하기 전, 목장지대의 소나무들이 흑염소가 비벼댄 까닭으로 등걸이 성하지 않아 일부는 죽어버렸거나 죽어가고 있어 마음이 심란하다. 듬성듬성 오래 묵은 소나무들이 한가로운 목초지를 지나면 이름 그대로 숲이 무성한 무성이골이 반긴다. 다양한 잡목 숲과 그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 그리고 어제 내린 비로 제법 수량이 있는 계곡이 심란해진 마음을 차분하게 감싸 안는다. 무성이골의 물줄기는 수레바위산 자락 왼쪽을 따라 흐르다가 용연마을 근처에서 용추계곡과 합쳐진다. 내려가는 입장이라 그렇겠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오르는 사람들도 많이 힘들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성이골의 숲길이 끝나고 술이박골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합쳐지면서 계곡이 넓어진다. 손바닥만 한 논배미들과 그럴듯한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정자에 앉아 계시는 마을 분들께 여쭤보니 외지에서 들어와 지은 것이 아니라 이곳 토박이들이 지은 집이라 한다.

남서향을 하고 있는 용연마을의 남동쪽은 수레바위산과 지장산이 이어지고 북서쪽으로는 무등산 중머리재에서 이어진 마집봉과 집게봉이 멀리 보이며 마을 바로 앞으로 용추계곡이 흐른다. 용추계곡을 따라 작은 논배미들이 펼쳐진다.

  용연마을은 용이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연못으로부터 유래된 이름이다. 황현(黃玹, 1855~1910)의『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의하면 1876년 가뭄 때 전라감사 정범조가 제2 수원지 위쪽에 있었던 이 못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1876년이면 조일수호조약(朝日修好條約), 즉 강화도조약이라 불리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었던 때여서 가뭄까지 들었던 것일까?

마을은 기우제 말고도 1960년대까지는 당산제를 지내는 등 옛 전통이 잘 보존되어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한때는 1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60여 호가 채 못되고 농악이 유명해 농악전수관까지 있을 정도지만 당산제가 없어지면서 그나마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용연마을 앞 당산나무 근처에는 도수로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용연정수장으로 동복수원지의 물을 끌어오기 위한 공사인가 보다. 당산나무인 커다란 느티나무를 살피고 다리를 건넌다. 왼쪽으로 가면 선교동으로 향해 내려간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용추계곡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제 2수원지가 가로막는다. 제2 수원지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만들어 졌다. 이 무렵 광주인구가 5만 여 명에 달해 물이 부족했던 까닭으로 증심사계곡에 있는 제1 수원지에 이어 건설된 것이다. 기능을 잃은 제1 수원지와는 달리 지금도 시내 일부 지역에서는 이곳의 물을 마신다.

  제 2수원지를 왼쪽으로 휘돌아 물봉선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 계곡을 3km쯤 올라가면 용추폭포에 이른다. 본래의 용추폭포는 지금보다 규모가 컸다고 한다. 수원지를 만들면서 이 폭포수를 맞으러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상수원이 오염된다며 폭포 윗부분을 폭파해 버린 탓으로 규모가 작아진 것이라 한다. 이 용추폭포 위로 조금 올라가면 광주천의 시원인 샘골이 있다. 한 번 올라가 볼 만한 길이다. 샘골에서 출발한 광주천은 화순 너릿재 초입에 자리 잡은 선교제에서 내려오는 물과 만나 광주의 도심을 지나 극락강과 만난다.

  용연마을에서 2㎞ 정도 되는 선교동을 향해 내려온다. 아스팔트 포장길이어서 걷는 맛이 덜하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무등산을 향해 왼쪽으로 꺾어지는 선교동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예전의 선동과 교항(다리목)을 합하여 지은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교동과 선동의 경로당이 각각 세워져 있다. 13길 종착점 못 미쳐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너릿재 옛길이 시작된다. 봄이면 벚꽃이 화사한 길이어서 한 번쯤 챙겨 걸어볼 만한 길이다. 걸음을 멈추는 다리목주변은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도로공사와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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