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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무돌길

무돌 14길 (광주천 생태길)

by 햇살과 뜨락 2023. 5. 9.

무돌 14길 (광주천 생태길)

 

  ‘광주천생태길’이라 이름 지어진 14길은 선교동 입구에서 화순읍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를 버리고 천변으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광주천변에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따라 4㎞ 정도 되는 남광주역까지 걷는 길이다. 이 자전거도로는 광주천의 물길을 따라 극락교까지 20㎞ 정도 조성되어 있으며 광주광역시를 관통해 나주, 함평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계속 만들어질 예정이다. 광주천은 도시의 중심부를 흐르는 까닭으로 70년대 이후 오염정도가 극심하였다.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가 바로 유입되어 물은 썩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꾸준한 정화 노력으로 지금은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광주천을 향해 내려가 둑길을 찾는다. 쌓인 눈 때문에 길 찾기가 수월하지 않다. 어렵게 사람의 자취가 없는 눈 덮인 둑길로 올라선다. 너릿재에서 내려오는 물길과 합쳐진 광주천은 너비가 넓어져 천변을 건너 둑 위로 불어오는 바람결이 제법 매섭다. 이곳 너릿재는 화순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로공사와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너릿재’는 18세기 『여지도서(與地圖書)』에 ‘판치(板峙)’로 기록되어 있다. 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산적에게 죽임을 당해 널에 실려 내려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처음 터널이 뚫리던 1971년 전까지는 그런 이야기가 실감될 만큼 험하고 아슬아슬한 고갯길이었다.

  광주천은 무등산 서쪽기슭인 샘골에서 발원해 광주 시내를 가로질러 흐른다. 약 24㎞의 거리를 흘러 극락강과 만나고 이어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으로 합쳐진다. 광주천의 이름은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건천(巾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금계(錦溪), 조탄(棗灘), 서천(西川), 전천(前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광주천이란 이름은 일제 강점기인 1916년에야 지어진 다소 무미건조한 이름이다. 전에는 건천을 비롯한 위와 같은 이름들로 불렸는데, 동네마다 그 지역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부르거나 특성에 따라 달리 불렀던 것이다.

  내지교를 지난다. 천변은 눈에 덮여 파리하게 햇살을 반사하고 부분적으로 개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물길의 차가움 속에 겨울 철새인 물오리와 청둥오리, 텃새인 왜가리가 눈길을 머물게 한다. 물이 맑아진 탓으로 제법 먹이가 있나 보다. 왼쪽으로 내지교를 지나 산기슭으로 구불구불 사라지는 길을 바라본다. 육판리길이다. 마을이 들어선지 6백여 년이 넘었다는 육판리는 풍수지리적으로 여섯 명의 판서가 배출될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은 80여 호에 이르는데, 지금은 내남동 내지마을이 공식적인 이름이다. 실제로 판서를 배출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분적산 아래 자리 잡은 이 마을의 주변 풍광은 제법 운치가 있다.

  남계교를 지나 분산교에 이른다. 인적이 없던 눈길에 사람의 발자국이 나타나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오른쪽으로 멀리 주남마을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5․18민중항쟁 때 공수부대에 의해 죄 없는 양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되고 암매장된 가슴 아픈 곳이다. 마을 입구에 늘어선 꽃농원들이 생경하게 다가온다. 녹동교 아래를 지나 둑길에서 천변으로 내려오자 매섭던 바람결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이곳에는 용산동 광주 도시철도공사 용산 차량기지와 지하철 녹동역이 자리 잡고 있다. 녹동역은 2004년 개통된 광주 지하철 1호선의 종착역으로, 또 다른 종착역인 광산구 평동역까지 20.5㎞를 광주천의 물길과 비슷하게 달린다.

  소태동과 지원동의 경계를 지나가는 광주 제 2순환도로의 지원교차로를 바라보며 용산교에 이른다. 도심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태안교를 지나 원지교에 이르면 두 개의 물길이 합쳐지면서 유역을 넓힌다. 증심사 계곡에서 내려온 물길이 합류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드니 원지교와 건물들 위로 눈 덮인 무등산이 듬직하게 다가온다.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원지교와 방학교 사이에는 물막이 둑이 있어 자연적인 풀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근처에 일제 때 지어진 화약고가 있어 그냥 화약고라 불렀다. 어렸을 때 그곳에서 수영을 배웠던 추억을 되새기며 설월교로 향한다. 이곳에서도 몇 종의 겨울 철새들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증심사 계곡은 광주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무등산을 오르는 여러 등반로가 있는 까닭이다. 증심사 계곡에도 1920년에 완공된 작은 수원지가 있다. 광주에서 맨 처음 만들어진 제 1수원지이다. 조선대학교 병원 산 능선에 정수시설을 만들어 광주도심에 수돗물을 공급하였는데, 지금은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제1 수원지 상류 쪽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좋은 오솔길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 계곡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인 증심사를 품고 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따 증심사계곡이라 부른다. 증심사로 향하는 길에 춘설헌과 의재미술관이 있다. 20세기 한국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선생과 관련된 문화유산이다. 증심사(證心寺, 문화재자료 1호)는 860년 선종 사자산문의 조사인 철감국사가 맨 처음 지었다고 하며 고려 때 혜조국사가 중창한 유서 깊은 절집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광해군 때 대규모의 중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인 1951년 오백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없어져 버렸다. 1970년대 이후 중창불사로 복원한 이 절집에는 보물 131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을 비롯한 여러 문화유산들은 품고 있다.

  방림교 밑을 지난다. 천 건너편 서쪽으로 방림동이 펼쳐진다. 아파트 숲이 울창하다. 오른쪽으로는 학동 팔거리라 하는 독특한 거리가 있다. 아니 골목길이라 해야 맞다. 이곳은 천변으로 길을 넓혀 놓은 천변좌로와 천변우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학림교와 남광교를 거쳐 남광주고가사거리를 지나 천변우로로 올라서 남광주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옛 남광주역은 순천, 여수를 지나 밀양의 삼랑진역에 이르는 경전선 철길이 지나가는 역으로 1930년에 ‘신광주역’으로 시작되었다. 이곳을 지나는 새벽기차에는 순천만과 여수반도에서 올라오는 해산물이 항상 그득했었다. 남광주시장이 형성된 이유 중 하나이다. 광주시민들은 싱싱한 해산물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렇게 붐비던 시장거리는 도심철도의 이설로 한산해졌다. 보존된 옛 남광주역을 휘둘러보고 역 앞의 시장골목에서 국밥을 먹으며 얼은 몸을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