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벅수와 짐대

해학이 넘치는 절집지킴이(쌍계사터 돌벅수)

by 햇살과 뜨락 2023. 5. 8.

  쌍계사터 돌벅수를 보려면 운흥사에서 나주 봉황면을 지나고 세지면에 다다라 남쪽을 바라보며 한참 달려가면 영암군의 동쪽 금정면에 이른다. 이 길! 23번 국도는 벚꽃 피는 계절이면 제법 달리는 맛이 있다. 벚나무엔 살그머니 단풍의 기운이 깃들었다. 봄에 남보다 먼저 꽃을 피우려면 일찍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벚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단풍이 든다. 영나로라 이름 지어진 23번 국도를 계속 달려 금정면 남송리에 이르면 장흥 유치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입석저수지를 바라보며 인곡마을로 꺾어진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인곡마을에 이르러 마을 뒤 감나무농원 끝자락에서 차를 버린다. 쌍계사터 돌벅수를 곧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옛날에는 이 산길이 영암 금정에서 장흥 유치로 넘어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거의 평탄한 오르막 계곡으로 난 길을 1km쯤 걸어 등허리에 제법 땀이 차오를 즈음 갑작스럽게 널찍한 평지를 나타나고 그곳에서 쌍계사터 돌벅수를 만난다. 돌벅수 주변으로 몇 송이 가녀린 꽃무릇이 전나무 그늘아래에서 싱그럽다. 여기서 500m 정도 더 올라가야 쌍계사터가 나온다. 절터에는 돌다리와 괘불지주, 폐허가 된 건물터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쌍계사가 자리 잡았던 국사봉의 반대편 남쪽 기슭에는 선종 가지산문의 개창지인 장흥 보림사가 여전히 건재한데….

  쌍계사터 돌벅수는 불법을 지키는 장군답게 참으로 위풍당당하고 늠름하다. 불회사와 운흥사에서 본 벅수들과는 완전히 그 모습이 다르다. 해학적인 표현보다는 강인한 힘과 위엄을 갈무리한 새김 솜씨가 뛰어나다. 돌벅수를 바라보면 과거 쌍계사가 상당한 규모를 갖춘 그럴듯한 절집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주 선 두 벅수 모두 벙거지를 쓰고 퉁방울눈과 주먹코에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있다. 무인의 풍모가 가득 우러나오는데, 주장군의 경우만 치아를 고르게 새겨 놓았다. 앞서 본 두 절의 할아버지, 할머니 벅수와는 달리 둘 다 남자이며 남도의 돌벅수들 중 가장 힘차고 강한 인상을 갖고 있는 벅수일 것이다. 벙거지를 쓰고 있어서인지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이미지가 겹치기도 한다. 당장군은 높이가 약 247cm, 주장군은 345cm에 달하는 긴 네모꼴 화강암에 새김질되어 있다. 언제 세웠는지 여러 의견이 있지만 불회사, 운흥사터 돌벅수와 비슷한 시기인 18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쌍계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 백운대사가 창건한 절집으로 이후 여러 차례 중창하였다. 조선 세조 9년(1463)의 중창을 마지막으로 기록이 없으며 언제 절이 없어졌는지도 불분명하다. 기왕에 돌벅수를 보러 나선 김에 남도의 맛깔스런 절집지킴이 둘을 놓치기 싫어 무안군 몽탄면으로 향한다.

  쌍계사터 돌벅수는 불법을 지키는 장군답게 참으로 위풍당당하고 늠름하다. 불회사와 운흥사에서 본 벅수들과는 완전히 그 모습이 다르다. 해학적인 표현보다는 강인한 힘과 위엄을 갈무리한 새김 솜씨가 뛰어나다. 돌벅수를 바라보면 과거 쌍계사가 상당한 규모를 갖춘 그럴듯한 절집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주 선 두 벅수 모두 벙거지를 쓰고 퉁방울눈과 주먹코에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있다. 무인의 풍모가 가득 우러나오는데, 주장군의 경우만 치아를 고르게 새겨 놓았다. 앞서 본 두 절의 할아버지, 할머니 벅수와는 달리 둘 다 남자이며 남도의 돌벅수들 중 가장 힘차고 강한 인상을 갖고 있는 벅수일 것이다. 벙거지를 쓰고 있어서인지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이미지가 겹치기도 한다. 당장군은 높이가 약 247cm, 주장군은 345cm에 달하는 긴 네모꼴 화강암에 새김질되어 있다. 언제 세웠는지 여러 의견이 있지만 불회사, 운흥사터 돌벅수와 비슷한 시기인 18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전남 민속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