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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해학이 넘치는 절집지킴이(불회사 돌벅수)

by 햇살과 뜨락 2023. 5. 8.

  불회사 돌벅수를 보기 위해서 능주에서 화순 도암으로 방향을 바꿔 달리다가 천불천탑의 절집인 운주사와 호암리 중장터마을을 지나쳐 휑하니 나주 다도로 돌아든다. 818번 지방도는 여기서부터 다도호의 물길을 따라 간다. 가로수에 내려앉은 상큼한 가을볕은 멀리 보이는 다도호의 물결에도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운주사가 있는 용강리에서 5km 남짓 달리면 길 왼편으로 불회사 일주문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절 입구까지는 비자나무와 편백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향 짙은 이 숲길을 따라 절집으로 향하다가 문득 길가에 마주선 불회사 돌벅수를 만난다.

  한 분은 심술궂기 짝이 없는 옹고집 영감탱이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제법 무섭게 보이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무섭다기보다는 다정하고 친근한 느낌이고 댕기처럼 땋은 수염에선 장난기마저 감돈다. 그 앞에 다소곳이 서있는 분은 아마 할머니인 모양이다. 평생 욕 한번 못하고 살았을법한 얌전한 얼굴이다. 자글자글 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는 무언가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고 웃고 있다.

  이처럼 절 입구에서 절집을 지키는 벅수를 호법벅수라 하는데, 오른쪽 할아버지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오목새김을 하여 놓았고 왼쪽의 할머니는 주장군(周將軍)이라고 새겨져 있다. 잘못된 이름이기는 하나 당장군이나 주장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으로부터 길을 따라 들어오는 역신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315cm에 달하는 할아버지 벅수의 ‘하(下)’자는 ‘정(正)’자 처럼 보이는데, 누군가 상원당장군으로 고치려고 나중에 획을 첨가한 것이 확연하다. 할머니는 몸통의 일부가 땅에 묻혀 180cm로 키가 작아졌다. 민초의 심성을 담아 놓은 듯 익살스러운 느낌으로 다가드는 이 한 쌍의 벅수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근처에 있는 운흥사터 돌벅수와 여러모로 비슷하여 조선 숙종 45년(1719)을 전후하여 만들어 진 것으로 추측한다. 해학적인 표현력이 뛰어난 작품이어서 국가 민속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회사(佛會寺)는 덕룡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절집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 마라난타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한다. 고려 말 도선국사가 크게 일으킨 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했다. 조선 정조 22년(1789) 큰 화재로 대부분 불타 버린 다음, 순조 8년(1808)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절집의 이름은 원래 불호사(佛護寺)라 하였으나 1808년 이후 불회사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 요즈음 대부분의 절집이 그렇지만 한적하고 소박하던 이 절집은 최근의 불사로 별로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허전하고 생소하다.

  유일한 문화재인 불회사의 대웅전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으로 된 조선 후기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건물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높게 쌓았고 다듬지 않은 주춧돌 위로 민흘림 둥근기둥을 세웠다. 이 위에 창방과 평방을 돌리고 포작을 배열하여 장식을 한 건물이다. 정면에는 빗살문양의 네 짝 짜리 문을 달았는데, 원래는 연꽃을 돋을새김한 문이었다고 한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이 건물은 정조 23년(1799)에 지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