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흥사터 돌벅수는 불회사에서 나와 다도면소재지를 향해 가다 보면 암정리(巖井里)가 나온다. 암정리의 강정교라는 작은 다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강정마을과 강정저수지를 넘어 약 2Km 남짓 가면 밭으로 변해버린 운흥사터가 나온다. 운흥사(雲興寺)는 도선국사가 암자를 지은 것이 기반이 된 절로 신라 효공왕(897~911) 때 크게 일으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절터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가 최근에야 아담한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여기에 있는 돌벅수 한 쌍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자상함과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상원주장군이란 이름의 할아버지는 팔자형 수염에 벙거지를 쓰고 두툼한 주먹코에 쌍꺼풀진 왕방울 눈을 지녔다. 이가 성치 않은 듯 주름진 합죽한 입은 살그머니 웃고 있다. 드라큘라처럼 뻐드렁니를 가지고 있으나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되려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막상 절집 수호해야 할 본래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는 의심이 간다. 이 벅수는 270cm 남짓 되는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하원당장군이란 이름의 할머니는 양미간에 백호로 보이는 X자를 새기고, 둥근 눈에는 속눈썹을 표현하였다. 입술 언저리에는 수염인지 주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선들을 새겨 두었고, 치아를 여러 개 드러내며 활짝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주걱턱을 하고 있는 이 할머니 벅수는 환하게 묻어나는 따스함으로 오가는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맞아줄 것만 같다. ‘어디 댕겨 오는가 보네. 시원한 물이라도 한 모금하고 좀 쉬었다 가지 그랴’라고 하면서…. 키가 210cm로 할아버지보다 약간 작은 할머니 벅수의 뒷면에는 강희 58년, 그러니까 조선 숙종 때인 1719년을 가리키는 명문이 오목새김되어 있다. 기록이 없는 수많은 벅수들 중 언제 세웠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몇 안 되는 귀중한 돌벅수이다. 기록도 그렇지만 너그러움과 나눔으로 세상을 대하는 우리네 민초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국가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 있는 돌벅수 한 쌍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자상함과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상원주장군이란 이름의 할아버지는 팔자형 수염에 벙거지를 쓰고 두툼한 주먹코에 쌍꺼풀진 왕방울 눈을 지녔다. 이가 성치 않은 듯 주름진 합죽한 입은 살그머니 웃고 있다. 드라큘라처럼 뻐드렁니를 가지고 있으나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되려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막상 절집 수호해야 할 본래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는 의심이 간다. 이 벅수는 270cm 남짓 되는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하원당장군이란 이름의 할머니는 양미간에 백호로 보이는 X자를 새기고, 둥근 눈에는 속눈썹을 표현하였다. 입술 언저리에는 수염인지 주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선들을 새겨 두었고, 치아를 여러 개 드러내며 활짝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주걱턱을 하고 있는 이 할머니 벅수는 환하게 묻어나는 따스함으로 오가는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맞아줄 것만 같다. ‘어디 댕겨 오는가 보네. 시원한 물이라도 한 모금하고 좀 쉬었다 가지 그랴’라고 하면서…. 키가 210cm로 할아버지보다 약간 작은 할머니 벅수의 뒷면에는 강희 58년, 그러니까 조선 숙종 때인 1719년을 가리키는 명문이 오목새김되어 있다. 기록이 없는 수많은 벅수들 중 언제 세웠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몇 안 되는 귀중한 돌벅수이다. 기록도 그렇지만 너그러움과 나눔으로 세상을 대하는 우리네 민초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국가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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