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주마을 돌벅수는 풍수지리적으로 개미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개미주’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개암지로, 그리고는 개암 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때 한자로 마을 이름을 고치면서 개미 ‘의’(蟻)를 써서 의지리로 변해 지금에 이른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의지리라는 행정명보다는 개암주라는 이름이 훨씬 친근하고 정겨워 옛 이름으로 부른다.
개암주마을 들머리에는 한 쌍의 돌벅수가 서있다.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 “에게!”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150cm에도 못 미치는 두 벅수는 500여 년 전 처음 자리를 잡고 마을을 가꾼 옥천 조씨가 괴질을 막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러나 실제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기둥모양이 아닌 약간 평편한 돌에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오목새김했다. 약간의 도드라짐을 느끼게 표현하기는 했으나 입체감을 나타내거나 특별한 장식도 하지 않아서 유치하다. 하지만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배어 나온다.
두 벅수 모두 크기도 작은 데다 새김솜씨 또한 형편없어서 마을을 지킬 신령스러운 힘을 가졌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거기다 표정은 왜 이리 어수룩하기가 짝이 없는지…. 전염병을 퍼트리는 역신을 내쫓기는커녕 오히려 혼이 나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모와 표정이 익살스러워 보는 사람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며 위압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새긴 사람의 심성이 교묘하게 담겨있는 것이다. 벅수는 마을 들머리에 세우는 까닭으로 마을 사람들도 매일 오가며 바라보기 때문에 너무 흉측하고 무섭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개미 모양과 배의 모양은 거의 비슷하므로 중심을 잡기 위해 돛대를 세워야 한다 하여 짐대 대신 미루나무 한 그루를 벅수 근처에 심어 놓았다. 돌벅수를 마을사람들은 ‘돌비석’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비석 돌처럼 평편하게 생긴 까닭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벅수는 삼국지의 장비 수염처럼 여러 방향으로 난삽하게 선은 그어 놓았고 여벅수는 수염이 없다. 두 벅수의 관계는 부부간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말한다. 벅수의 본래 자리는 지금보다 마을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공동우물 뒤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199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마을제사는 따로 없고 아기를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이 개별적으로 간단하게 제를 올린다고 한다.
개암주마을 들머리에는 한 쌍의 돌벅수가 서있다.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 “에게!”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150cm에도 못 미치는 두 벅수는 500여 년 전 처음 자리를 잡고 마을을 가꾼 옥천 조 씨가 괴질을 막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기둥모양이 아닌 약간 평편한 돌에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오목새김했다. 약간의 도드라짐을 느끼게 표현하기는 했으나 입체감을 나타내거나 특별한 장식도 하지 않아서 유치하다. 하지만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배어 나온다.
두 벅수 모두 크기도 작은 데다 새김솜씨 또한 형편없어서 마을을 지킬 신령스러운 힘을 가졌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거기다 표정은 왜 이리 어수룩하기가 짝이 없는지…. 전염병을 퍼트리는 역신을 내쫓기는커녕 오히려 혼이 나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모와 표정이 익살스러워 보는 사람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며 위압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새긴 사람의 심성이 교묘하게 담겨있는 것이다. 벅수는 마을 들머리에 세우는 까닭으로 마을 사람들도 매일 오가며 바라보기 때문에 너무 흉측하고 무섭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개미 모양과 배의 모양은 거의 비슷하므로 중심을 잡기 위해 돛대를 세워야 한다 하여 짐대 대신 미루나무 한 그루를 벅수 근처에 심어 놓았다. 돌벅수를 마을사람들은 ‘돌비석’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비석 돌처럼 평편하게 생긴 까닭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벅수는 삼국지의 장비 수염처럼 여러 방향으로 난삽하게 선은 그어 놓았고 여벅수는 수염이 없다. 두 벅수의 관계는 부부간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말한다. 벅수의 본래 자리는 지금보다 마을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공동우물 뒤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199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마을제사는 따로 없고 아기를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이 개별적으로 간단하게 제를 올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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