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벅수와 짐대

마을을 지키는 민초들의 자화상(권포마을 돌벅수)

by 햇살과 뜨락 2023. 5. 5.

  권포마을 벅수는 모두 4기인데 마을 입구 바깥쪽에 1쌍과 안쪽에 1쌍이 조산(돌무더기)과 함께 있다. 화강암 석질로 되어 있는 이들 벅수는 모두가 마을 앞이 확 트인 곳에 서 있어 마을의 허한 곳을 막아주는 비보벅수로 짐작된다. 바깥 벅수 중 마을로 들어가는 왼쪽 벅수는 남벅수로 콘크리트 기단을 만들어 세웠는데 크기가 1.75m이며 몸통에는 '갑자원월'이란 명문이 있어 건립연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갑자년이라 하지만 60년 만에 돌아오는 어느 갑자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실상사 돌벅수와 같은 시기로 보아 1744년 이전에 세운 것으로 짐작하며 오른쪽 벅수는 명문이 없고 여벅수로 크기가 1m 50cm로 조금 작다. 이름은 풍화가 심해 알 수 없으나 가동마을에 거주하는 노인의 말에 의하면 콘크리트 기단에 묻힌 벅수 하부에 가정(嘉靖) 2년이란 명문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가정이란 명나라 12대 황제 세종의 연호로써 1521년 등극하였다. 따라서 중종 18년(1523)에 세운 셈이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 마을 안쪽 벅수는 바깥쪽벅수보다 작다. 서쪽 벅수는 1.28m, 동쪽 벅수는 1.06m로 모두 명문이 없다. 길 서쪽에 자연석으로 쌓은 1기의 조산이 있는데 높이 2m 정도이다. 과거에는 음력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그러나 실상사 돌벅수와 같은 시기로 보아 1744년 이전에 세운 것으로 짐작하며 오른쪽 벅수는 명문이 없고 여벅수로 크기가 1.50m로 조금 작다. 이름은 풍화가 심해 알 수 없으나 가동마을에 거주하는 최상촌씨의 말에 의하면 콘크리트 기단에 묻힌 벅수 하부에 가정(嘉靖) 2년이란 명문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가정이란 명나라 12대 황제 세종의 연호로써 1521년 등극하였다. 따라서 중종 18년(1523)에 세운 셈이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 마을 안쪽 벅수는 바깥쪽벅수보다 작다. 서쪽 벅수는 1.28m, 동쪽 벅수는 1.06m로 모두 명문이 없다. 길 서쪽에 자연석으로 쌓은 1기의 조산이 있는데 높이 2m 정도이다. 과거에는 음력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