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단리를 돌아 나와 오산면소재지에 이르면 여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제법 넓은 들을 품은 계곡을 따라 휘돌아 들어가면 30여 가구 정도의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청단리와는 꾀꼬리봉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이다. 율천리(栗川里) 율천 돌벅수는 동네로부터 200m쯤 떨어진 마을 입구에 마련된 당산 숲과 함께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벅수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이름은 산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에서 시작된 ‘밤내’를 한자로 밤 ‘栗’자와 내 ‘川’자로 옮겨 써버렸다. 얼핏 밤나무가 많은 마을로 오해하기 쉽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마을 이름을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돌벅수와 당 숲은 마을 앞이 허해 도적이 성행하고 화재가 빈번하자, 도승이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 ‘나무를 심고 비석을 세우면 마을에 좋다’고 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마을 앞이 휑하게 열려 있어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이곳 당 숲엔 돌벅수 외에도 남근석 2기와 선돌 1기가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돌벅수는 백여 년 전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판석형 입석 2개를 가지고 와서 세웠다고 한다. 벅수를 세운 후, 마을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더라도 벅수 주위에서만 맴돌다 날이 새자 물건을 버리고 줄행랑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수호신인 벅수들에게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할머니 벅수는 얼굴의 윤곽만을 오목새김하여 놓았는데, 일자형의 눈썹과 동그란 눈, 꽉 다문 입술을 가졌다. 할아버지 벅수는 유실된 후, 최근에 자연석을 가져다가 얼굴을 다시 새겨 놓았다. 수호신 역할을 하려면 무서워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수구막이는 수구맥이, 수살맞이 등으로도 불리는데, 풍수지리에서 골짜기의 물이 돌아 흘러 마을 어귀에서 물길이 감춰지는 지형을 말한다. 율천마을처럼 마을이 감춰지지 않고 허(虛)한 경우, 숲을 조성하거나 벅수, 짐대, 입석 등을 세워 마을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율천마을 당산은 이런 수구막이의 다양한 내용을 거의 갖추고 있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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