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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마을을 지키는 민초들의 자화상(가곡리 돌벅수)

by 햇살과 뜨락 2023. 5. 5.

  오산면소재지로 다시 돌아 나와 율천리와는 반대방향으로 나직한 구릉 길을 3㎞ 정도 구불구불 들어가면 300여 년 묵은 느티나무가 멋스러운 가곡마을 당산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툭 트인 들판이 펼쳐지면서 나직한 산자락에 안긴 가곡마을이 편안하게 다가든다. 마을이 안긴 곳은 매봉산 서쪽 자락이다. 지금은 옥과면에서도 들어올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이 길이 마

을 들머리였을 것이다.

당산에서 곧게 마을로 향하는 아스팔트 길 양쪽에 가곡리(柯谷里) 돌벅수가 마주 보고 서 있다. 가장자리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가곡리는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가작골의 한자표현이다. 이 마을은 주위의 산세가 ‘개(介)’자와 같다고 해서 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마을 뒤에는 개사라는 절터가 있으며, 독특한 형태의 오 층 석탑(지방유형문화재 11호)이 남겨져 있다. 몇 기 안 되는 백제계석탑이어서 마을 뒤로 들어가 살펴볼만하다. 신숙주와 같은 고령 신 씨 선산이 있는 곳이다.

  이 돌벅수는 언제, 무엇 때문에 세워졌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인지, 오층석탑이 있던 절의 비보용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마을 앞이 넓어 수구막이의 역할을 겸한 것 같기도 하다. 역할이야 어쨌든 한국전쟁 때, 어떤 사람이 사격연습을 하기 위해 이 돌벅수에다 총을 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튿날 이유 없이 급사한 사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여자벅수에 입맞춤하면

잘산다고 하는 말이 있어 외지 사람들이 간혹 와서 입을 맞추고 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할아버지 벅수는 새겨 놓은 돌이 검게 부식되어 버려 잘 살펴야 한다. 230㎝의 훌쩍한 키에 갓을 쓰고 있으며 눈은 가지런히 뜨고 세 갈래의 수염이 새겨져 있다.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의 문인석과 느낌이 비슷하다. 거의 같은 크기의 할머니 벅수는 삼산관과 비슷한 족두리를 쓰고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인자한 표정이 우리들의 옛 어머니 모습처럼 느껴진다. 두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는 듯 하나 구분이 어렵다. 당산에서 곧게 마을로 향하는 아스팔트 길 양쪽에 가곡리(柯谷里) 돌벅수가 마주 보고 서 있다. 가장자리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가곡리는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가작골의 한자표현이다. 이 마을은 주위의 산세가 ‘개(介)’자와 같다고 해서 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마을 뒤에는 개사라는 절터가 있으며, 독특한 형태의 오 층 석탑(지방유형문화재 11호)이 남겨져 있다. 몇 기 안 되는 백제계석탑이어서 마을 뒤로 들어가 살펴볼만하다. 신숙주와 같은 고령 신 씨 선산이 있는 곳이다.

  이 돌벅수는 언제, 무엇 때문에 세워졌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인지, 오층석탑이 있던 절의 비보용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마을 앞이 넓어 수구막이의 역할을 겸한 것 같기도 하다. 역할이야 어쨌든 한국전쟁 때, 어떤 사람이 사격연습을 하기 위해 이 돌벅수에다 총을 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튿날 이유 없이 급사한 사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여자벅수에 입맞춤하면

잘산다고 하는 말이 있어 외지 사람들이 간혹 와서 입을 맞추고 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할아버지 벅수는 새겨 놓은 돌이 검게 부식되어 버려 잘 살펴야 한다. 230㎝의 훌쩍한 키에 갓을 쓰고 있으며 눈은 가지런히 뜨고 세 갈래의 수염이 새겨져 있다.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의 문인석과 느낌이 비슷하다. 거의 같은 크기의 할머니 벅수는 삼산관과 비슷한 족두리를 쓰고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인자한 표정이 우리들의 옛 어머니 모습처럼 느껴진다. 두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는 듯 하나 구분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