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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마을을 지키는 민초들의 자화상(남원 주천 돌벅수)

by 햇살과 뜨락 2023. 5. 5.

남원군 대강면을 향해 840번 지방도를 달린다. 길 왼쪽으로 섬진강을 두고 오른쪽으로 동악산(動樂山, 737m)을 바라보며 대강면소재지로 향한다. 서봉리를 나서서 얼마가지 않아 섬진강이 휘돌며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곳에 닿는다. 거기에 함허정(涵虛亭, 유형문화재 제160호)과 군지촌정사(君池村精舍, 중요민속자료 제155호)가 있어 발길을 멈춘다. 대강면소재지에서 745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순창읍으로 향한다. 순창읍에는 2기의 돌벅수가 남겨져 있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진 데다 역할마저도 잃어버렸지만, 예전엔 순창읍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독특한 모양새를 가진 돌벅수이다.

남원 주천 돌벅수 돌벅수는 주천면 호기리에서 육모정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하천 옆에 자리한 돌벅수로 마을에서는 '미륵', '미륵정'이라 부르고 있다. 높이 270㎝, 둘레 221㎝이며 목이 없고 원숭이 같은 얼굴이 가슴 쪽에 붙어있다. 머리에는 패랭이를 쓰고 왕방울 눈에 볼도 볼록하게 나와있고, 커다란 주먹코에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방상시 탈과 비슷한 ‘방상시(方相氏)’란 중국의 주나라와 한나라 때 궁궐과 백성이 잡스러운 귀신이나 역신(천연두)을 쫓아내기 위하여 섣달그믐에 베풀었던 의식에서 사용한 눈이 4개 달린 ‘탈’의 한 종류다.​ 이 돌벅수는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남원시 노암동에 살았던 김양근의 일족들이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오는데, 김양근의 6대 조인 김기수가 조선조 정조 22년(1798)에 세상을 떠난 지 3일 만에 다시 환생하여 꿈속에서 본 노인을 찾다가 땅속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환생한 김양근은 정신이 들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토막 꿈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하여 자손들에게 자기가 그동안 겪은 일을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내가 죽자 한 노인이 길을 인도하여 따라가는데 한눈도 팔지 못하도록 엄하게 단속하며 만일 무의식 중에 곁눈질이라도 할라치면 심한 매질까지 해 가며 똑바로 앞만 바라보며 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옆이나 뒤를 전혀 살피지 못한 채 한참을 가노라니 웬 대궐 같은 집이 나타나고 그 속에 많은 문서들이 들어차 있는데, 서류를 맡아보는 이가 일일이 문서를 살피며 조사를 하더니 아직 들어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 길로 다시 나가되, 처음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 눈 팔지 말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나가야 하지 만일 곁눈질이라도 한다면 그냥 살려 보내지 않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더구나. 그래서 앞만 바라보고 다시 나오는데, 앞에 강물이 나타나므로 길이 막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편지 한 통을 주면서 빨리 가지고 가라며, 또 빨리 가지 않는다고 매질을 하므로 정신없이 헤매다가 물 위에 걸쳐 있는 겨릅대를 딛고 가다가 그만 물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떠보니 그때가 바로 내가 환생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후 남원고을 방방곡곡을 헤매며 저승에서 본 그 노인을 찾아다니다가 지금의 신기리 논 속에 묻혀 있던 미륵석불을 발견하여 캐냈는데, 이 미륵석불이 바로 그 노인임을 확인하고 크게 감사하며 매년 칠월 칠석날, 이 석상을 찾아와 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자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제사 지내온 뒤로 가세가 늘어 후대에 남원의 부호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