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선 말기의 회화(약 1850년∼1910년)
이 시기에는 후기에 유행한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쇠퇴하고 그 대신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남종화가 더욱 세력을 떨친다. 또한 개성이 강한 화가들이 나타나 참신하고 이색적인 화풍을 창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경향은 김정희와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희룡, 허유, 전기 등 이른바 추사파와 윤제홍, 김수철, 김창수 등의 학산파 그리고 홍세섭 등의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김정희 일파가 남종화법을 다져놓는데 기여했다면 윤제홍 일파와 홍세섭 등은 남종화법을 토대로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이색 화풍을 형성하는데 그 공로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남종화법의 토착화는 한국 근대 및 현대의 수묵화가 외향적으로는 남종화 일변도의 조류를 형성케 한 계기가 되었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회화는 중국 청대 후반기 회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18세기 조선후기 회화의 전통을 이어 전 시대 못지않게 뚜렷한 성격의 화풍을 형성하였고, 또 근대 회화의 모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었다. 조선 말기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현상은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남종화가 이 시대의 화단을 풍미했다는 사실이다. 김정희는 금석학과 고증학에 뛰어났으며, 서예에서는 파격적인 추사체를 이루어 우리나라 서체를 일변시켰고 회화에서는 남종화 지상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와 달리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문인화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토속적인 진경산수나 풍속화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김정희의 제자로서 호남화단의 기초를 다진 소치 허련과 함께 오원 장승업이 배출되어 개성이 강한 화풍을 형성하고 제자들인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등을 통해 현대 화단으로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화풍이 중국적 성향을 강하게 띤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세한도는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대표적인 산수화로서,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1844년(헌종 10)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변함없이 지극함에 감동하여 그려준 그림이다. 이러한 사연은 그림의 왼편에 쓰여있는 추사의 발문(跋文)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추사는 발문에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논어(論語)」자한 편(子罕篇)의 글귀를 인용하여 권력과 이익에 좌우되는 세상인심과, 그 가운데서도 잊지 않고 중국에서 구한 귀한 서책을 귀양 간 스승에게 보낸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를 칭찬하였다. 또한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은 특히‘세한(歲寒)’이라는 시기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고적하고 어려운 자신의 유배생활을 세한(歲寒)에 비유하고, 송백(松柏)과 같은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굳센 의지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넓은 공간에 자그마한 집과 아름드리 송백만이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어 추운 시절의 황량한 느낌이 잘 나타나 있다. 삼각형의 안정된 구도 속에 꼿꼿하고 굳센 필치와 메마르고 차가운 먹색이 어우러져 고고(孤高)한 문기(文氣)를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다. 이상적은 중국어 역관(譯官)으로 십 여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스승의 소개로 중국의 명망 있는 문사(文士)들과 깊이 교유하였다. 추사에게서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이듬해 다시 중국 북경에 가게 되었고 옛 친구인 오찬(吳贊)의 잔치에서 세한도를 내보였다. 이때 자리를 함께 했던 청나라 문사 16인은 이 그림을 감상하고는 세한도의 높은 품격과 사제간의 깊은 정에 감격하여 저마다 이를 기리는 시문(詩文)을 남겼다. 현재 세한도의 두루마리에는 그림 뒤쪽에 이들의 시문이 모두 붙어 있으며, 이외에도 김준학(金準學),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정인보(鄭寅普, 1892∼?)의 찬문(讚文)도 포함되어 있다.
변상벽의 〈고양이와 참새〉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고목에 앉은 참새를 그린 작품이다. 한 마리의 고양이는 나무에 올라가고 또 한 마리의 고양이는 아래에서 나무 위의 고양이를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모습을 포착하였다. 봄날인 듯 고목의 잔가지에는 새싹이 돋아 있고, 그 가지에 재잘거리는 여섯 마리의 참새가 그려져 있다. 고양이는 가는 붓으로 털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렸는데, 굽은 등의 모습이나 꼬리의 탄력성, 눈의 표정 등 고양이의 세부적인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고양이의 세부적인 묘사와는 달리 고목 등걸은 먹의 농담을 살려가며 능숙한 솜씨로 그려내었으며, 풀밭의 잔잔한 묘사로 그림의 완성도를 높였다.
장승업은 산수, 인물, 사군자 등 모든 영역에서 그 기량이 뛰어나 화원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활발한 필력과 속기 없는 마음씨로 호탕한 그림을 그렸으며, 대륙의 화풍을 받아들였다. 그의 개성이 잘 나타난 '호취도'는 고목의 줄기를 몰골법으로 표현하여 힘참 필세를 보여 주며, 윗가지의 꺾임새에서는 필묵의 멋이 한껏 느껴진다. 고목의 잎은 윤기 있는 설채로 운치를 살렸고, 두 마리의 독수리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강세황은 사림 출신의 서화가로서, 개성일대를 여행하며 그린
<송도기행첩>에 수록된 그림 중의 하나로 <영구통도>는 바윗더미의 입체 표현에 대담함을 보여 당시의 한양 화단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채색의 농담으로 입체감을 살린 기법은 우리나라 미술사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홍세섭은 고종 때 승지를 지낸 선비화가이다. 그는 별로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국내외로 주목을 받아 재평가 화가 중의 한 사람이며 남아있는 그림은 드물다. 이 그림은 원래 8폭 중의 하나인데, 담채보다 훨씬 효과를 낸 참신한 근대회화의 기법으로 마치 서양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남종 화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전대에 전래되어 있었던 것이나 본격적인 유행을 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이 남종화법의 유행은 조선 후기의 회화가 종래의 북종화 기법을 탈피하여, 새로운 화풍을 창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켜 주었다. 또한 남종화법의 전개에는 남종 문인화론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이 형사(形似)보다는 사의(寫意)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대두되어, 역시 참신한 화풍의 태동을 가능케 하였다. 후기의 강세황, 이인상, 신위, 그리고 말기의 김정희 등은 남종화의 유행을 부채질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한국의 회화( 바위새김그림,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불화, 조선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불화(高麗佛畵) (1) | 2023.07.31 |
---|---|
바위새김그림(암각화巖刻畵) (0) | 2023.07.25 |
조선시대의 회화( 3. 조선 후기 1700∼1850년 경) (3) | 2023.07.21 |
조선시대의 회화(2. 조선중기 1550-1750년 경) (1) | 2023.07.20 |
조선시대의 회화(1. 조선초기 1392-1550년 경) (1) | 2023.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