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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회화( 바위새김그림,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불화, 조선회화)

조선시대의 회화( 3. 조선 후기 1700∼1850년 경)

by 햇살과 뜨락 2023. 7. 21.

3. 조선 후기의 회화

    조선 후기는 조선시대 다운 매우 새로운 경향의 회화가 등장한다.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라 할 수 있는 화풍을 지닌 조선만의 작품들이 이 시대를 풍미한 것이다. 조선 후기의 회화는 세종조 때 꽃 피웠던 조선 초기의 회화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조선 초기의 회화가 송, 원대 회화의 영향을 바탕으로 한국적 특성을 형성하였다면 후기의 회화는 명, 청대 회화를 수용하면서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의식을 발현하였고 더불어 화가들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향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양식과 경향의 회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새로운 회화 기법과 문화적인 흐름의 변화, 그리고 시대적 배경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영, 정조 연간에 팽배했던 자아의식은 조선 후기의 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회화뿐만 아니라 문화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조선의 산하와 조선인의 생활상을 소재로 다룬 조선 후기의 회화, 진경산수와 풍속화는 특히,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청나라의 강희(康熙, 1662∼1722년), 옹정(雍正, 1723∼1735년), 건륭(乾隆, 1736∼1795년) 연간의 중국 회화와 함께 그곳에 전래되어 있던 서양화풍까지 조선사회에 전해져 조선 후기 회화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던 것이다.

   새로운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에 기반을 둔 이 시대 회화의 조류를 살펴보면 조선 중기 이래 유행하였던 절파계 화풍이 쇠퇴하고 그 대신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한다.

두 번째로는 남종화법을 토대로 한반도에 실제로 존도성재하는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가 겸제 정선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거기에다가 조선인들의 생활상과 삶의 장면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가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 등에 의하여 그려지면서 조선 중기 윤두서의 풍숙화가 김홍도, 신윤복의 노력과 재능에 의해 나름의 세계를 연출한다. 더불어 한국화에 서양화의 기법이 어느 정도 수용하기 시작하였던 사실을 들 수 있다.   남종화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전대에 전래되어 있었던 것이나 본격적인 유행을 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이 남종화법의 유행은 조선 후기의 회화가 종래의 북종화적 기법을 탈피하여 새로운 화풍을 창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켜 주었다.   또한 남종화법의 전개에는 남종 문인화론이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의 형사(形似)보다는 사의(寫意)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대두되어 조선초기의 화풍에 새로운 양식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후기의 강세황(姜世晃) · 이인상(李麟祥) · 신위(申緯) 그리고 말기의 김정희(金正喜) 등은 남종화의 유행을 부채질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러한 남종화법을 토대로 발전된 전형적인 한국적 회화가 바로 진경산수이다. 정선에 의하여 발전된 진경산수는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실경을 한국적으로 발전된 남종화법을 구사하여 그려낸 산수화를 말한다.  본래 조선의 자연을 소재로 삼아 그리는 화풍은 이미 고려시대에 생겨 조선 초기와 중기에 걸쳐 계속 전통의 맥락을 이어왔다.

 

  그러나 정선 일파의 진경산수는 비단 한국의 실경을 소재로 다룰 뿐만 아니라 남종화법을 토대로 하여 새로이 발전된 화풍을 지니고 있는 것이 더욱 큰 특색이다. 그러므로 상상에 의한 관념적 산수화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보고 느낀 직접적인 시각 경험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음으로써 진경산수는 농도 짙은 생동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시각을 당기는 구도와 개성화된 각종 준법, 농담이 강한 필묵법과 안온한 설채법(設彩法) 등은 정선과 그의 추종자들의 화풍을 더욱 한국적인 것으로 돋보이게 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풍속화는 이미 조선 초기와 중기의 각종 계회도(契會圖)를 비롯한 기록화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속화(俗畫)라고도 불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풍속화는 역시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金得臣) 등 후기 화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되었다.   김홍도와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김득신은 주로 서민 생활의 단면들을 소재로 삼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양반만을 대상으로 양반만을 위해서 그려진 전 시대의 계회도와는 달리 그들의 풍속화는 서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하에서 이루어졌다.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 후기의 서민들이 그들의 주인공이며, 초가와 논밭과 대장간이 그 주인공들의 활동 무대를 이룬다.

  이러한 풍속화는 전시대의 회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새로운 것이다. 서민들의 생활 주변에서 찾은 재미있는 소재를 간결하면서도 초점을 이루는 구도 속에 익살스럽게 승화시킨 것이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가 지니는 큰 특색이다. 김홍도나 김득신과는 대조적으로 신윤복은 남녀 간의 애정 문제를 파헤치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그의 주인공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이기보다는 인생의 즐거움과 ‘로맨스’를 누리는 한량이나 기녀, 양반 등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유교적인 규범이 엄격하였던 당시에 남녀 간의 애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당시의 사회적 풍조를 고려해도 대담한 용기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신윤복은 산수나 옥우(屋宇)를 배경으로 그의 주인공들을 섬세하고 유연한 필치와 산뜻한 채색을 구사하여 세련되게 표현하였다. 이렇듯 신윤복은 소재의 선택 · 구도 · 배경 설정 · 필법 · 설채법 등 다각적인 면에서 김홍도나 김득신과는 큰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의 시대상이나 생활상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진지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는 데에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솔직하게 반영한 가장 한국적인 화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 과거를 상당한 부분을 관념적으로 기억할 뻔하였다.

  조선 후기의 회화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중국을 통한 서양화법의 전래와 수용이다. 명암법과 원근법 · 투시도법으로 특징지어지는 서양화법은 청조에서 활약한 서양인 신부들에 의하여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연경을 오고 간 사행원(使行員)들의 손을 거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두량(金斗樑) · 이희영(李喜英) · 박제가(朴齊家) 등의 일부 18세기 화가들에 의하여 수용되기 시작한 서양화법은 그 뒤에도 화원들이 그리는 궁궐의 의궤도(儀軌圖)나 민화의 책거리 그림 등에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화가들이 수용한 서양화법은 오늘날의 유화와는 달리 한국적 소재를 명암이나 요철법 또는 원근법을 가미하여 다룬 수묵화의 한 가지였다. 이 화법은 비록 널리 유행하지는 못하였지만 회화상의 근대화를 예시하는 중요한 것이었다고 믿어진다. 아마도 이 화법의 전래와 수용은 19세기의 한국 회화가 이색적인 화풍을 형성할 수 있게 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의 회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새로운 회화 기법과 사상의 수용 및 시대적 배경에 연유한 것으로 믿어진다. 영, 정조 연간에 팽배했던 자아의식은 조선 후기의 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산천과 한국인의 생활상을 소재로 다룬 조선 후기의 회화는 특히 주목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청나라의 강희(康熙, 1662∼1722년) · 옹정(雍正, 1723∼1735년), 건륭(乾隆, 1736∼1795년) 연간의 중국 회화와 그곳에 전래되어 있던 서양화풍이 전해져 조선 후기 회화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새로운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에 기반을 둔 이 시대 회화의 조류로는,   조선 중기 이래 유행하였던 절파계 화풍이 쇠퇴하고 그 대신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점과  남종화법을 토대로 한반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 산수화가 정선 일파를 중심으로 하여 크게 발달하였으며 조선인들의 생활상과 애정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가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 등에 의하여 풍미하였다.

한편 서양화법이 전래되어 어느 정도 수용되기 시작하였던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남종화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전대에 전래되어 있었던 것이나 본격적인 유행을 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이 남종화법의 유행은 조선 후기의 회화가 종래의 북종화적 기법을 탈피하여 새로운 화풍을 창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켜 주었다. 또한 남종화법의 전개에는 남종 문인화론이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 형사(形似)보다는 사의(寫意)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대두되어 역시 참신한 화풍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후기의 강세황(姜世晃), 이인상(李麟祥), 신위(申緯) 그리고 말기의 김정희(金正喜) 등은 남종화의 유행을 부채질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러한 남종화법을 토대로 발전된 전형적인 한국적 회화가 바로 진경산수이다. 정선에 의하여 발전된 진경산수는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실경을 한국적으로 발전된 남종화법을 구사하여 그려낸 산수화를 말한다. 본래 한국의 실경을 소재로 삼아 그리는 화습은 이미 고려시대에 생겨 조선 초기와 중기에 걸쳐 계속 전통의 맥락을 이어왔다. 그러나 정선 일파의 진경산수는 비단 한국의 실경을 소재로 다룰 뿐만 아니라 남종화법을 토대로 하여 새로이 발전된 화풍을 지니고 있는 것이 큰 특색이다.

  진경산수와 더불어 조선 후기 회화에서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풍속화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풍속화는 이미 조선 초기와 중기의 각종 계회도(契會圖)를 비롯한 기록화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속화(俗畫)라고도 불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풍속화는 역시 김홍도 · 신윤복 · 김득신(金得臣) 등 후기 화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되었다. 김홍도와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김득신은 주로 서민 생활의 단면들을 소재로 삼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양반만을 대상으로 양반만을 위해서 그려진 전 시대의 계회도와는 달리 그들의 풍속화는 서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하에서 이루어졌다.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 후기의 서민들이 그들의 주인공이며, 초가와 논밭과 대장간이 그 주인공들의 활동 무대를 이룬다. 이러한 풍속화는 전시대의 회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새로운 것이다. 서민들의 생활 주변에서 찾은 재미있는 소재를 간결하면서도 초점을 이루는 구도 속에 익살스럽게 승화시킨 것이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가 지니는 큰 특색이다. 김홍도나 김득신과는 대조적으로 신윤복은 남녀 간의 애정 문제를 파헤치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그의 주인공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이기보다는 인생의 즐거움과 ‘로맨스’를 누리는 한량이나 기녀, 양반 등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유교적인 규범이 엄하였던 당시에 남녀 간의 애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당시의 사회적 풍조를 고려해도 대담한 용기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신윤복은 산수나 옥우(屋宇)를 배경으로 그의 주인공들을 섬세하고 유연한 필치와 산뜻한 채색을 구사하여 세련되게 표현하였다. 이렇듯 신윤복은 소재의 선택 · 구도 · 배경 설정 · 필법 · 설채법 등 다각적인 면에서 김홍도나 김득신과는 큰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의 시대상이나 생활상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진지하고 적나라하게 묘파 하였다는 데에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솔직하게 반영한 가장 한국적인 화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 과거의 상당한 부분을 모를 뻔하였다.

조선 후기의 회화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중국을 통한 서양화법의 전래와 수용이다. 명암법과 원근법 · 투시 도법으로 특징지어지는 서양화법은 청조에서 활약한 서양인 신부들에 의하여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연경을 오고 간 사행원(使行員)들의 손을 거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두량金斗樑) · (李喜英) · 박제가(朴齊家) 등의 일부 18세기 화가들에 의하여 수용되기 시작한 서양화법은 그 뒤에도 화원들이 그리는 궁궐의 의궤도(儀軌圖) 민화의 책거리 그림 등에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화가들이 수용한 서양화법은 오늘날의 유화와는 달리 한국적 소재를 명암이나 요철법 또는 원근법을 가미하여 다룬 수묵화의 한 가지였다. 이 화법은 비록 널리 유행하지는 못하였지만 회화상의 근대화를 예시하는 중요한 것이었다고 믿어진다. 아마도 이 화법의 전래와 수용은 19세기의 한국 회화가 이색적인 화풍을 형성할 수 있게 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