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선 중기의 회화
조선 중기는 임진왜란 · 정유재란 · 병자호란 · 정묘호란 등의 극도로 파괴적인 대란이 일어났고 사색당쟁이 지속되어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안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새로운 화풍이 형성되었다. 특히 조선ㅍ초기의 흐름들이 나름의 지속성을 가지고 수용되었고 주제가 다양화 하였으며 서정적인 한국화 표현과 다양한 주제가 나타났다.
이 시대에는, 조선 초기에 강희안 등에 의해 수용되기 시작한 절파계 화풍이 김제(金褆), 이경윤(李慶胤), 김명국(金明國) 등에 의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또 이정근(李正根), 이흥효(李興孝), 이징(李澄) 등에 의하여 조선 초기의 안견파 화풍이 추종되고 있었다. 그리고 김식(金褆), 조속(趙速) 등에 의하여 영모나 화조화 부문에서 애틋한 서정적 세계의 한국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묵죽 · 묵매 · 묵포도 등에서도 이정(李霆) · 어몽룡(魚夢龍) · 황집중(黃執中) 등의 대가들이 꽃을 피웠다. 이밖에도 중국 남종 문인화가 전래되어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던 조선 중기에 이처럼 회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초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전해졌기 때문으로 믿어진다. 사실상 중기의 화가들은 안견파 화풍을 비롯한 조선 초기의 회화 전통에 집착하는 경향이 현저하였다.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의 토대 위에 발전시켰던 것이다.
중기의 회화에서 또한 크게 주목되는 것은 조선 왕조적인 정취를 짙게 풍겨주는 영모와 화조화가 발달하였던 사실이다. 달무리진 눈매와 퉁퉁한 몸매를 보여 주는 김식의 소 그림, 애잔한 느낌을 자아내는 조속과 지운(之耘) 부자의 수묵 화조화 등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리고 이정의 묵죽, 어몽룡의 묵매, 황집중의 묵포도 등에도 한국화 현상이 현저히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 중기의 회화도 조선 초기 회화의 전통을 잇고 새로운 화풍을 가미하면서 조선 중기 특유의 양식을 발달시켰다. 이 시기에 풍속화, 자화상 등으로 유명한 화가로는 공제 윤두서를 들 수 있다. 그의 자화상은 꿰뚫듯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수염의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과 성격이 드러나도록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남종화풍이 도입되었으나 정치적인 민감함과 보수적인 전통 때문이었는지 유행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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