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 564-2 해창마을(조양마을)
해평리 석장승 (海枰里 石長栍, 전남 문화재자료 제55호)
해창마을이 접해있는 득량만의 물고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남쪽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물고기와 여러 해산물들을 조세로 걷어 모아놓은 곳이 해창이다. 그러므로 해창을 운영하던 조선시대에는 크고 활발한 마을이었고 근래까지도 150여 호가 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70여 호로 줄어들어 한적해졌다. 득량만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평야라고 부를 정도의 대규모 간척지가 생겨나고 생산방식이 어업에서 농업이 주가 되는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여전히 ‘당제’라 부르는 마을제사는 멈추지 않는다. 이 마을은 두 개의 마을로 나눠지는데 윗마을은 정자골, 아랫마을이 벅싯골이라 한다.
해창마을 들머리에 서있는 한 쌍의 돌벅수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같은 독특한 방법으로 금줄을 매달고 있다. ‘웃당산’으로 모시는 400여 년 묵은 느티나무 바로 앞쪽에서 정겹게 마주보고 서있는 벅수는 잘 가꾸어진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철쭉들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래서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한 달 남짓 화려하고 싱그러운 철쭉과 담백하고 묵은 돌벅수와의 묘한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돌벅수는 마을지킴이치고는 상당한 새김솜씨를 보여준다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지금은 터만 남은 개흥사라는 절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마을을 향해 오른쪽에 서있는 돌벅수는 돌담으로 자리를 만들었고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 이름 하였다. 좀 무뚝뚝해 보인다. 철쭉으로 가꾸어진 왼쪽자리에는 모신 벅수는 막걸리 꽤나 좋아하게 생기셨고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돌벅수는 절집지킴이로 탄생하여 불법을 지키다가 해창의 원만한 수송과 주민들의 평안과 안정을 지원하는 마을지킴이로 구실을 바꿔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장군 이름을 수입해 쓰는 것은 천연두, 콜레라같은 전염병을 막기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18세기 주로 사용한 절집지킴이의 이름이다. 전염병이 중국을 통해 한반도로 침입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상원주장군은 여성을 표현하려한 듯 보이며 민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은 주름진 이마에 왕방울 눈, 주먹코, 턱에는 수염이 없고 인동초 문양과 비슷한 무늬를 오목새김으로 새겨놓았다. 하원당장군 역시 비슷한데 인동초 문양 대신 굵은 수염을 새겨 남성임을 나타내고 있다. 두 벅수 모두 키가 2m 남짓한 네모난 기둥에 전형적인 벅수의 얼굴을 새겼으나 약간의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인상을 준다. 당산나무는 반대편 들머리에도 한 그루가 더 있어 이를 ‘아랫당산’이라 하며 마을제사는 정월 보름에 지낸다.
해창마을이 접해있는 득량만의 물고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남쪽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물고기와 여러 해산물들을 조세로 걷어 모아놓은 곳이 해창이다. 그러므로 해창을 운영하던 조선시대에는 크고 활발한 마을이었고 근래까지도 150여 호가 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70여 호로 줄어들어 한적해졌다. 득량만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평야라고 부를 정도의 대규모 간척지가 생겨나고 생산방식이 어업에서 농업이 주가 되는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여전히 ‘당제’라 부르는 마을제사는 멈추지 않는다. 이 마을은 두 개의 마을로 나눠지는데 윗마을은 정자골, 아랫마을이 벅싯골이라 한다.
해창마을 들머리에 서있는 한 쌍의 돌벅수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같은 독특한 방법으로 금줄을 매달고 있다. ‘웃당산’으로 모시는 400여 년 묵은 느티나무 바로 앞쪽에서 정겹게 마주보고 서있는 벅수는 잘 가꾸어진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철쭉들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래서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한 달 남짓 화려하고 싱그러운 철쭉과 담백하고 묵은 돌벅수와의 묘한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돌벅수는 마을지킴이치고는 상당한 새김솜씨를 보여준다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지금은 터만 남은 개흥사라는 절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마을을 향해 오른쪽에 서있는 돌벅수는 돌담으로 자리를 만들었고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 이름 하였다. 좀 무뚝뚝해 보인다. 철쭉으로 가꾸어진 왼쪽자리에는 모신 벅수는 막걸리 꽤나 좋아하게 생기셨고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돌벅수는 절집지킴이로 탄생하여 불법을 지키다가 해창의 원만한 수송과 주민들의 평안과 안정을 지원하는 마을지킴이로 구실을 바꿔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장군 이름을 수입해 쓰는 것은 천연두, 콜레라같은 전염병을 막기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18세기 주로 사용한 절집지킴이의 이름이다. 전염병이 중국을 통해 한반도로 침입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상원주장군은 여성을 표현하려한 듯 보이며 민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은 주름진 이마에 왕방울 눈, 주먹코, 턱에는 수염이 없고 인동초 문양과 비슷한 무늬를 오목새김으로 새겨놓았다. 하원당장군 역시 비슷한데 인동초 문양 대신 굵은 수염을 새겨 남성임을 나타내고 있다. 두 벅수 모두 키가 2m 남짓한 네모난 기둥에 전형적인 벅수의 얼굴을 새겼으나 약간의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인상을 준다. 당산나무는 반대편 들머리에도 한 그루가 더 있어 이를 ‘아랫당산’이라 하며 마을제사는 정월 보름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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