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세동선생 묘(范世東先生 墓, 기념물 제23호)
광주 광산구 덕림동 산94-1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포은 정몽주의 제자인 복애(伏涯) 범새동(范世東)의 묘지이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과거에 급제하여 덕녕부윤, 간의대부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화해사전』,『동방연원록』 등의 책을 펴냈다. 조선 왕조의 개창을 반대하며, 고향인 나주(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복만동)에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죽은 뒤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다.
묘역 안에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묘비와 문인석이 있다. 1.65m 높이의 묘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 화강암의 사각형 대좌에 맞추어 세웠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서 있는 문인석은 높이 210㎝로 각이 진 관모를 쓰고 눈·코·입이 뚜렷한 얼굴에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홀을 들고 있다.
범세동(范世東, ? ~ 1397?)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금성,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통찬(通贊) 후춘(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제자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범장(范樟) 혹은 휴애거사 범장(休崖居士 范樟)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가 〈북부여기(北夫餘紀)〉를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국가만세에 마땅히 범세동 선생과 운곡 선생의 말을 좇아야 한다”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사람이다.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 華海師全》을 편집하고 《동방연원록 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다. 1369년(공민왕 18년)에 과거에 합격하였다. 덕녕부윤(德寧府尹)에 이어 낭사(郎舍)의 책임자인 간의대부(諫義大夫)를 역임하였다. 사후에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성의 표절사(表節祠),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광주의 복룡사(伏龍祠)에 제향되었다.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경기도 개성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개성직할시 개풍군 광덕면 만수산 두문동
고려말 충신들은 새왕조에 불복하고 두문동에 들어와서 마을의 동서쪽에 모두 문을세우고 빗장을 걸어놓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두문동 72현이 후세에 절의의 표상으로 숭앙되었고 1783년 정조 7년에 왕명으로 개성의 성균관에 표절사를 세워 배향하게 했다 1934년 개성에 세운 두문동서원은 임선미 (林先味)의 후손 임하영(林河永)이 주동이 되어 창건하였는데 고려말 불사이군 대의를 위하여 순절한 72현및 정몽주 이색 등 절의를 지킨 고려말충신 119위를 모신서원이다.
용호재(龍湖齋) 광주광역시 북구 생룡동 317
복룡사(伏龍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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