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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광산구)

무양서원(武陽書院, 문화재자료 제3호)

by 햇살과 뜨락 2023. 5. 31.

무양서원(武陽書院, 문화재자료 제3호)

광주 광산구 산월로21번길 26(월계동)

  무양서원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자리 잡고 있다. 무양서원은 ‘무진의 볕’이라는 의미의 무진지양에서 연유한다. 무진은 광주의 옛 이름이다. 무진의‘무(武)’와 볕의 한자어인‘양(陽)’이 만나 무양이 되었다. 이렇게 무양이라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서원의 기능을 보다 폭넓게 하려는 유림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서원은 명현에게 제사를 모시고 후학들에게 교육 시키는 곳이다. 서당이나 향교처럼 교육기관은 아니면서도 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 바로 서원이라 할 수 있다. 무양서원 역시 명현을 제사하는 사당과 교육을 담당하는 재의 역할을 겸하는 곳이었다. 무양서원은 1927년 탐진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운 곳이다. 여기에는 고려 인종 때의 명신 장경공 최사전을 비롯하여 그의 후손인 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와 문절공 유희춘, 충렬공 나덕헌 등 다섯 분을 모시고 있다.

  배향된 인물 중 주벽인 장경공 최사전은 인종 때 어의였다. 소부소감을 지낸 명신으로 죽은 뒤 인종의 묘정에 함께 모셔진 인물이다. 손암 최윤덕은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불출하면서 벼슬을 물리친다는 이유로 끝내 광산으로 귀양을 떠났다. 귀양지에서 손암은 후손들에게 벼슬하지 말 것, 집안에 사당을 세우지 말 것, 토지를 많이 두지 말 것 등 선비로서의 자세를 가르쳤다. 금남 최부는 성종 때 사람으로 동국통감을 편수하였으며, <표해록>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부친상을 듣고 제주에서 돌아오던 중 명나라로 표류하였다가 훗날 귀국하여 지은 글이 <표해록>이다. 문절공 유희춘은 금남 최부의 외손이며 <미암일기>를 남겼다.

  충렬공 나덕헌 역시 금남의 외손으로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다섯 인물을 배향하고 있는 무양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마주 보인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강당의 구조를 살펴보면, 이택당의 좌우로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는데, 합인문이 일반적으로 출입하는 문이다. 합의문을 지나면 오른쪽에는 동재인 성지재가 있고, 왼쪽에는 서재인 낙호재가 있다. 높은 대지 위에는 담장을 돌린 무양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내삼문인 삼오문은 사우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삼오문 좌측과 우측 문짝 위에 특이한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면 때문인지 서원을 들고날 때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은근하다.  이곳은 서원 외에도 정자와 넓은 광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다. 뿐만 아니라, 서원 주변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아름드리 거목들은 꿋꿋한 기상을 지닌 유림들처럼 말없이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지역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는 곳이다.

  광주광역시에서는 1987년 무양서원을 지방문화재 자료 3호로 지정하였다. 무양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9월 6일에 제향을 하므로 서원과 그 제례에 관하여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이 날을 택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