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동 장고분(明花洞 長鼓墳, 기념물 제22호)
광주 광산구 명화동 170-5
명화동 장고분은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영산강 충적지대의 가장자리인 평동저수지 위쪽 완만한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장고분이란 명칭은 무덤의 모양이 전통 악기인 장고와 비슷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주변의 지명에 장고분을 덧붙여 이름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명화동 장고분의 봉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두 개의 삼각형이 서로 하나의 꼭지점에서 맞닿아 있고, 그 위로 원형의 봉분이 둥그렇게 얹혀진 모양이다.
꼭지점이 맞닿은 부분은 잘록하고 낮다. 때문에 연결부분이 좀 더 펑퍼짐한 경우에는 밑면이 사다리꼴로 보일 수도 있다. 장고분의 가장자리는 넓은 도랑이 빙 두르고 있는데, 도랑을 포함한 고분의 형태는 방패형으로 보인다. 명화동 장고분의 봉분의 길이는 33미터이며, 원형 부분에 석실을 축조하였으나 도굴과 파괴로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에 석실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이 고분에서는 사다리꼴과 원형의 연결부분 가장자리를 따라 봉분에 박혀 있는 원통형 토기 등이 발견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고분으로 일찍부터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 고분은 봉분과 도랑의 모양, 봉분 가장자리의 원통형 토기 등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비슷한 점이 많아 고대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전방후원분이라는 용어는 사각형 분구가 앞에, 원형 분구가 뒤에 있는 것으로 보고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직각형 분구를 전방부, 뒤의 분구를 후원부로 하여 전방후원분이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2개의 분구 중 피장자가 매장된 곳은 뒤쪽 원구이지만, 방구부에도 매장시설을 가진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명화동 장고분의 고분 아래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고분은 1994년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형태와 구조를 밝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1995년 지방기념물 제22호로 지정하여 관리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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