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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광산구)

박용철 생가(朴龍喆 生家, 기념물 제13호)

by 햇살과 뜨락 2023. 5. 31.

박용철 생가(朴龍喆 生家, 기념물 제13호)

광주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소촌동)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안윽한 이 항구인들 손 쉽게야 버릴 거냐~

  가수 김수철이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두야 간다」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용아 박용철(龍兒 朴龍喆 1904~1938)의 시 「떠나가는 배」에 곡을 붙인 것이다. 질식할 것만 같은 식민지 땅에서 울분을 가슴에 품고 희망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의 마지막 작별의 시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찡한 감동을 안겨준다. 광주가 낳은 서정시인 용아 박용철은 영랑 김윤식과 함께 한국 시문학의 새 지평을 연 개척자다. 1930년대 문단을 휩쓸던 경향파에 대항하여 순수서정시운동을 전개했던 용아의 생가는 광산구 소촌동 금호타이어 앞 삼거리 근처에 있다.

  ‘박용철 생가’라는 표지판을 지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100여m 들어가면 토석 담장에 둘러싸인 초가집이 나타난다. 입구에 용아 생가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표석이 세워져 있다. 지방기념물 13호로 지정된 이곳은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가 남아 있고 텃밭까지 포함하면 2,600㎡에 달하는 널찍한 집이다. 뜨락의 윤기 흐르는 동백잎, 초가이엉 얹은 담장이 조촐하면서도 정갈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뒷동산에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바로 이곳에서 용아가 나고 자랐다.

  1904년 태어난 그는 서너 살 때 덧셈, 뺄셈을 하고 사자소학을 외우는 등 일찍이 천재의 바탕을 드러냈다. 서울 배재고에 진학한 그는 시험기간에도 밤늦게까지 삼국지나 소설책을 읽는데도 항상 우등을 차지했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었고, 조국과 민족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배재고 3학년 때 동급생들과‘목탁’이라는 비밀신문을 찍어 돌리기도 했다. 그는 3.1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청산학원 4학년에 편입한다. 그곳에서 그는 평생의 지기 영랑을 만났다.

  용아와 영랑의 만남은 한국현대문학사의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자네는 뒤를 따르게나! 나는 앞장서서 풀섶 이슬 떨어줌세’라는 용아의 말처럼 용아는 시의 이론으로 무장하여 20년대 위축된 문학의 자율성 정립에 앞장섰고, 영랑은 남도의 가락에 서정시의 숨결을 담아 노래했다. 용아는 생전에 유독 초가지붕을 사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부친이 기와로 개조하려고 하자 용아는 “시골집은 초가라야 어울립니다. 가을에 이엉을 올려놓은 후 은은한 달빛이 비추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노랗게 빛나는 그 색깔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고 만류했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시멘트 기와를 얹었던 이곳은 1995년 초가지붕으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돌담에도 초가 이엉을 얹어 정겨운 고향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용아의 자취는 광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시비가 송정공원과 광주공원에 세워져 있다. 생가 바로 지척에 있는 송정공원을 오르다 보면 왼편으로 돛배 모양의 시비가 보인다. 이 시비에는 용아의 대표시 ‘떠나가는 배’가 새겨져 있고, 동판으로 만든 용아 초상이 있다. 광주공원에는 용아의 시비와 영랑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박용철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고, 광산구에서는 1992년부터 박용철 선생 추모 전국백일장대회가 열리고 있다.

  용아의 후배들이 다니는 송정중앙초등학교는 용아축제 한마당을 열고 있으며, 교정에 진달래와 개나리, 산수유가 피는 ‘용아동산’을 만들었다. 비록 용아는 조국해방을 보지 못하고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청춘들의 가슴을 울리는 절창으로 영원히 사랑 받을 것이다.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안윽한 이 항구-ㄴ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가치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뫼ㅅ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닛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도라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압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잇슬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