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길 41
우동리 짐대당산을 찾을 때면 실학의 1세대인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 1622~1673)선생이 떠오른다. 경세치용학파인 그는 우동리 우반동 산중턱의 반계서당에 은거하면서 26권에 달하는 방대한 실학서인 ‘반계수록’을 집필했다. 반계수록은 당시 조선이 처한 현실, 즉 정치․경제․문화에 관한 총체적이며 진보적인 개혁서이다. 우동리 짐대당산도 이론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했던 그가 병란을 피해 이곳에 왔을 때 군사 훈련 목적으로 세웠던 것이 후에 당산이 된 것이라 전한다.
‘당산거리’라고 불리는 마을 들머리의 당산에는 수백 년 묵은 팽나무가 246㎝ 높이의 선돌을 감싸 안고 있었다. 간혹 우리나라 당산에서 보이는 현상으로 나무가 커가면서 당산나무와 선돌이 한 몸처럼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 오래 묵은 당산나무가 죽고 그 보다 작은 팽나무가 선돌과 함께 서있다.
당산에는 여러 기의 짐대도 세워져 있는데, 가장 높은 것은 7m이 넘으며 짐대위의 오리는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 해 걸러 세우는 짐대는 대나무(시눗대)로 만든 ‘지시라기’를 물고 있다. 짐대를 세운 뒤에는 마을사람들이 60m 쯤 되는 줄다리기용 암줄과 수줄을 어깨에 메고 풍물을 치며 마을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남녀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여자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보니 대부분 여자 쪽이 이기도록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다리기를 한 동아줄을 나무짐대 밑 부분에 감아두는데, 이를 ‘옷입히기’라 한다. 부안․고창․영광 지역에서 많이 하는 민속이다.
이 당산을 마을사람들은 ‘짐대할매’라고도 하고 아랫당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짐대를 당산과 동일시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도 선돌을 짐대석이라 하고 나무짐대는 오리솟대라 부른다. 이들 오리솟대와 선돌인 짐대석은 주신인 당산나무의 하위 신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당산은 어디 일까? 할아버지 당산은 마을 뒷산의 산신이어서 신체가 없는 관계로 마을 뒤쪽에 있는 소나무밭의 일정한 장소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를 웃당산제라하며 화주와 제관, 축관만이 참여하는 간소한 제사로 천룡제라고도 한다.
지금도 금줄이 걸리고 명태가 묶여 있을 뿐 아니라 줄다리기용 동아줄로 ‘옷 입히기’를 해놓은 걸로 보아 마을제사를 지내는 것이 확실하다. 당산나무 아깝게 죽었으나 젊은 팽나무가 대물림을 하고 있고 짐대는 여전히 아름답다. 겨울하늘에 노을이 지면 짐대의 실루엣과 팽나무가지의 흐름이 바람에 자디잘게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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