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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정읍 내목마을 짐대당산

by 햇살과 뜨락 2023. 5. 16.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내목 2구(뫼 약수마을)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내목 오릿대(소줏대) 당산제

  약간의 용트림을 한 가녀리고 높다란 짐대 위에는 하얀 주머니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오리에게 걸려있는 이것은 ‘복주머니’, 또는 ‘물밥’이라 하는데, 흰 천으로 만든 복주머니에는 쌀 서 홉과 동전을 넣어둔다. 아마 신의 전령인 오리가 북쪽 하늘나라로 날아갈 때 비상식량과 노잣돈으로 쓰라고 넣어두는 것이 아닌가 싶다.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로 하늘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마음을 담는 방법 중 하나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등 일부 지방에서 벅수의 목에 핸드백처럼 걸어놓는 짚으로 짠 주머니인 ‘오쟁이’ 또는 ‘씨앗보쟁이’를 생각나게 한다. 복주머니는 주로 아들이 없는 집에서 정성으로 준비해 매단다. 짐대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기자신앙의 한 흐름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솟대라는 이름 대신 주로 짐대라고 부르며 이 짐대를 남부지방에서는 촛대, 오릿대, 소줏대 등으로도 부른다. 짐대는 마을 들머리의 정자와 마을회관이 있는 광장에 7m 정도의 높이로 보통 3∼4기가 세워져 있다. 마을의 서남쪽에 있는 화경산 때문에 마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 노스님의 조언대로 오백여 년 전부터 짐대를 세우고 제를 지내며 정성으로 모셨단다. 노스님 대신 도사라고도 하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꽤 오래된 당산제의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목욕리는 이름이 암시하듯 ‘선녀들이 내려와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온천개발을 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아직 시행을 못하고 있는 곳이다. 신비한 우물에서 사시사철 온천수가 솟는다는 마을의 내력을 소개하며 기념하는 비석을 외목 마을 들머리 공동우물터에 세우기도 했다. 짐대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만드는데 옛날에는 용트림하는 굵은 소나무를 사용했으나 어려움이 많아 요즘엔 가늘고 긴 나무를 사용한다. 물에 사는 까닭으로 불에 강해 풍수적으로 화재예방과 관련이 많은 오리가 승천하는 용의 머리에 올라탔으니 그 성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목욕리는 노령정맥의 이름난 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군왕의 정기가 서려있는 성주봉, 왕자산, 세자봉과 해발 830m의 장군봉 등이 이름을 뽐내며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명당이라는 내목마을도 한때는 70여 호 이상이 살았으나 지금은 30여 호에 불과한 산골마을로 쇠락했다. 짐대 세우기와 제사는 매년 2월 초하룻날 지내지만 언제 없어질지 불안하기만 하다. 생산양식과 삶의 방법이 달라지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마뜩잖다.
  작년 (2019년)까지만 해도 짐대 위의 오리에 걸려져 있던 복주머니, 또는 물밥(희고 작은 주머니)이 올해에는 다 떨어져 버려 나름의 특징이 사라져 버렸다. 북녘하늘로 날아갈 때 쓰시라고 노잣돈과 쌀 서홉을 넣어두었는데, 그것마저 없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