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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바람의 손짓, 고창 오거리 짐대당산(하거리 당산)

by 햇살과 뜨락 2023. 5. 12.

(하거리 당산)

  고창천을 따라 걷는다. 요즘 대한민국의 물줄기들은 4대 강 사업과 하천정비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창천도 정비사업이 한창이다. 환경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젠 자연스러운 물줄기의 흐름과 자연 그대로의 주변 풍광을 볼 수 없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휘돌던 물길을 직선으로 바꾸고, 강변은 시멘트로 도배하고, 둑을 막아 물을 가두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이 썩기 시작한다. 더구나 각종 물막이 보의 부실공사로 대재앙의 가능성마저 내비치니 가슴만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한 결과가 과연 어떤 결말을 가져올는지….

  중앙당산에서 서쪽을 향해 천변남로를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 신흥교 못 미쳐 왼쪽으로 꺾어진다. 넓은 공터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하거리 할아버지당산이 반긴다. 예전, 건물들 사이에 있을 때와는 달리 주변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어 상승감이 더욱 강하다. 하거리 당산은 지금은 사라진 ‘서부리 숲쟁이’와 함께 조성되었다고 한다. 즉, 고창천의 수구막이 당산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삼흥동(森興洞)에 있는 이 당산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가 모여 있었다. 할아버지당산은 네모난 모자를 쓴 돌기둥이고 그 곁에 있는 비석이 할머니당산이다. 아들은 바로 곁의 오래 묵은 팽나무이며 역시 팽나무였던 며느리당산은 없어졌다.

 

  키가 645㎝에 달하는 할아버지당산은 고창 오거리당산 중 가장 높다. 고창의 주산인 방장산(方丈山, 734m)을 바라보며 우뚝 솟은 네모난 돌기둥으로 꼭대기에 삿갓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어 갓 당산 또는 삿갓비석이라고도 불린다. 기둥 아래쪽에 ‘진서화표가경 8년 계해 3월 일(鎭西華表嘉慶8年 癸亥3月 日)’이라는 명문이 오목새김되어 있다. 서쪽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당산이라는 의미이다. 화표란 무덤 앞에 세우는 문이나 무덤 양옆에 세우는 돌기둥인 망주석을 말한다. 일종의 수문장인 셈이다. 하지만 고창의 당산에 세워진 화표당산들의 역할은 짐대에 가깝다. 다만 돌기둥 꼭대기에 오리를 얹어 놓지 않고 갓과 비슷한 모자를 씌운 것이 독특하다. 자연발생적이 아니고 양반지주와 향리들이 주도하여 세운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석처럼 생긴 할머니당산에는 ‘고창읍내 수구 입석비(高敞邑內 水口 立石碑)’라 오목새김되어 있다. 이 명문으로 하거리 당산의 기능이 물의 침범을 막는 수구막이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팽나무가 세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수신목(守身木)과 며느리당산은 말라 죽어 버렸다.

  아들당산 아래에는 제단 비슷한 타원형의 큰 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할아버지당산 아래에 놓아두었다. 이 돌은 득남을 기원하는 ‘기자석(祈子石)이라고 하며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는다’는 믿음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김에 개인적인 바람도 곁들인 것이다. 바램이 많다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았다는 의미여서 마음 한편으로 서글픔이 스친다.

  고창천을 따라 걷는다. 요즘 대한민국의 물줄기들은 4대 강 사업과 하천정비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창천도 정비사업이 한창이다. 환경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젠 자연스러운 물줄기의 흐름과 자연 그대로의 주변 풍광을 볼 수 없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휘돌던 물길을 직선으로 바꾸고, 강변은 시멘트로 도배하고, 둑을 막아 물을 가두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이 썩기 시작한다. 더구나 각종 물막이 보의 부실공사로 대재앙의 가능성마저 내비치니 가슴만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한 결과가 과연 어떤 결말을 가져올는지….

  중앙당산에서 서쪽을 향해 천변남로를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 신흥교 못 미쳐 왼쪽으로 꺾어진다. 넓은 공터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하거리 할아버지당산이 반긴다. 예전, 건물들 사이에 있을 때와는 달리 주변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어 상승감이 더욱 강하다. 하거리 당산은 지금은 사라진 ‘서부리 숲쟁이’와 함께 조성되었다고 한다. 즉, 고창천의 수구막이 당산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삼흥동(森興洞)에 있는 이 당산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가 모여 있었다. 할아버지당산은 네모난 모자를 쓴 돌기둥이고 그 곁에 있는 비석이 할머니당산이다. 아들은 바로 곁의 오래 묵은 팽나무이며 역시 팽나무였던 며느리당산은 없어졌다.

 

  키가 645㎝에 달하는 할아버지당산은 고창 오거리당산 중 가장 높다. 고창의 주산인 방장산(方丈山, 734m)을 바라보며 우뚝 솟은 네모난 돌기둥으로 꼭대기에 삿갓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어 갓 당산 또는 삿갓비석이라고도 불린다. 기둥 아래쪽에 ‘진서화표가경 8년 계해 3월 일(鎭西華表嘉慶8年 癸亥3月 日)’이라는 명문이 오목새김되어 있다. 서쪽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당산이라는 의미이다. 화표란 무덤 앞에 세우는 문이나 무덤 양옆에 세우는 돌기둥인 망주석을 말한다. 일종의 수문장인 셈이다. 하지만 고창의 당산에 세워진 화표당산들의 역할은 짐대에 가깝다. 다만 돌기둥 꼭대기에 오리를 얹어 놓지 않고 갓과 비슷한 모자를 씌운 것이 독특하다. 자연발생적이 아니고 양반지주와 향리들이 주도하여 세운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석처럼 생긴 할머니당산에는 ‘고창읍내 수구 입석비(高敞邑內 水口 立石碑)’라 오목새김되어 있다. 이 명문으로 하거리 당산의 기능이 물의 침범을 막는 수구막이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팽나무가 세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수신목(守身木)과 며느리당산은 말라 죽어 버렸다.

  아들당산 아래에는 제단 비슷한 타원형의 큰 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할아버지당산 아래에 놓아두었다. 이 돌은 득남을 기원하는 ‘기자석(祈子石)이라고 하며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는다’는 믿음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김에 개인적인 바람도 곁들인 것이다. 바램이 많다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았다는 의미여서 마음 한편으로 서글픔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