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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바람의 손짓, 고창 오거리 짐대당산(중거리 당산)

by 햇살과 뜨락 2023. 5. 12.

(중거리당산)

   상거리 당산으로부터 걸어서 20여분 거리인 중거리 당산으로 향한다. 중앙동에서 영광 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중거리당산은 풍수적으로 남쪽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며 특히, 왜구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킬 방편으로 조성된 것이라 한다. 중거리 당산의 할아버지당산 앞에 선다. 이 돌기둥에는 근래까지 당산제 때 줄다리기를 한 후, 그 줄을 감아놓았었다. 그런데 금줄만 덜렁 감겨져 있다. 이런! 올해는 줄다리기를 안했나? 하지만 중앙 당산을 찾았을 때, 의문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위치상 본래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던 중앙동 할아버지당산이 시장통 건물 사이에서 넓은 공터로 옮겨지면서 나름의 역할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중거리 당산의 할아버지는 367cm 높이의 네모난 돌기둥으로 삿갓모양의 모자를쓰고 있다. 이 할아버지의 서쪽 면에는 ‘천년완골흘연진남, 가경8년계해3월O일(千年頑骨屹然鎭南, 嘉慶8年癸亥3月O日)’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우뚝 솟아 남쪽의 나쁜 기운을 눌러주길 바란다는 뜻을 담은 글이다. 큰 길가 인도에 있어 당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남쪽으로 40m 정도 떨어진 골목 안 할머니가 있는 곳까지 아마 당산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2m 정도 되는 넓적한 자연석을 그대로 세워 놓았다. 중거리 당산도 한 가족이 모여 있었다고 하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나무였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진 아들과 며느리 당산은 할머니 당산이 있는 골목길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중거리 당산은 고창읍의 남쪽으로 뻗은 좌청룡의 지맥이 모양성을 지나 나직하게 내려앉은 곳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호랑이 형국 앞에서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며 누워있는 평화스러운 어미 개 모양이라 한다.

고창 오거리 당산의 당산제는 제를 지내는 날이 각각 다르다.

상거리와 하거리는 정월 초하루에, 중거리와 교촌은 정월 초사흘에, 중앙당산은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이때에는 오방의 모든 주민이 모여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미신이라는 이유로 폐지되어 숨어서 지내는 등 명맥만 유지하다가 1981년에야 다시 부활하였다. 뜻있는 인사들이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를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했고 풍물, 줄다리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까지 함께 진행하였다. 이 보존회는 2007년 전북 무형문화재 제 37호로 지정되었다.

  한때는 중거리당산에서 대보름 당산제를 지냈으나 중앙당산을 ‘고창 문화의 전당’ 앞 공터로 옮기면서 2012년부터는 중앙당산에서 제를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중거리에서 대보름 당산제를 지낸 이유도 나름 타당성이 있다. 고창읍의 좌청룡인 남쪽 산세가 허하고 왜구의 침략이 잦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방을 비껴 남방인 중거리에서 주민들의 단합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