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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92

순천 미초마을 나무벅수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 외롭다! 갸름한 얼굴과 청초함을 새치름하게 간직한 미초마을의 암벅수는 짝꿍인 숫벅수를 여의고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어 더욱 외롭다. 벅수답지 않은 고운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담겨 있고, 살짝 내민 혀는 천진한 장난기를 머금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보다는 안타까움을 더할 뿐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당산제도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젯밥은커녕 수고하신다고 물 한 잔 주는 이도 없을 것이어서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 벅수가 쓰러지고 나면 이 마을에 다시 벅수가 세워질까? 아닐 것이다.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더구나 마을에 새로 다리를 놓는 바람에 들머리가 달라져 버려 마을지킴이로서의 구실마저 잃고 말았다. 미초(美草)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풀이 자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2023. 4. 30.
통도사 국장생석표(梁山 通度寺 國長生石標, 보물) 통도사 국장생석표(梁山 通度寺 國長生石標, 보물 제74호) 경남 양산시 백록리 양산대로 27-2 국장생석표는 장승도 벅수도 아니다. 이정표(里程標), 경계표(境界標) 등의 기능을 갖는 장승은 고려시대까지는 흔히 ‘장생(長生)이라 불렀으나 기둥에 사람의 얼굴이 새겨지지는 않는다. 이 석표는 절집의 경계를 표시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고려 때 나라에서 절집에 주는 전답의 크기가 매우 넓어짐에 따라 절집의 땅과 일반 촌락의 땅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 표시로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사냥이나, 살생, 땔나무하기 등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이 석표는 경계 표시뿐만 아니라 절집의 경계가 신성 구역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구실도 하였다. ‘사지사방산천비보(寺之四方山川裨補)’의 뜻을 갖는 것으로 나중에 절집지킴이 구.. 2023. 4. 30.
영암 소전머리 황장생(靈岩소전머리皇長생, 전남 민속문화재) 영암 소전머리 황장생(靈岩소전머리皇長생, 전남 민속문화재) 영암 군서면 동구림리 433-3 소전머리 황장생은 죽장리 국장생과 메밀방죽 옆 장생과 함께 도갑사(道甲寺)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는 장생이다. 소전머리 황장생은 도갑사 방향으로 400~500 여 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소전머리 대나무밭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처럼 생긴 장생이다. 높이 105∼120㎝ 정도의 직육면체로 앞면 가운데에 ‘황장생(皇長生)’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한쪽모서리가 약간 깨진 상태이다. 황장생의 ‘황’이라는 글자는 하대신라와 고려시대에 왕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라고 한다. 절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곳에 정성을 들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장생이라는 말은 주로 하대신라와 고려 .. 2023. 4. 30.
벅수와 짐대 벅수 우리는 우리의 수호신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 벅수라 부르면 안 되고 장승이라 불러야 옳은 표현이란다. 법수(法首)라 쓰면 잘못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수호신이 아닌 경계표, 또는 이정표의 구실을 해왔던 노표를 일컫던 장승(長丞)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전에도 벅수를 ‘장승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웃기는 짓거리다. 독립한 지 80여년이 지났는데도 이 모양이다. 1895년 역참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고려 때부터 경계표시와 이정표로 사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라진 '장승'이 살아나서는안된다는 생각이다. 일제는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통해 장승을 표준말처럼 교육하고 장승의 승(丞)자가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라는 사실도 언급하.. 2023.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