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
외롭다! 갸름한 얼굴과 청초함을 새치름하게 간직한 미초마을의 암벅수는 짝꿍인 숫벅수를 여의고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어 더욱 외롭다. 벅수답지 않은 고운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담겨 있고, 살짝 내민 혀는 천진한 장난기를 머금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보다는 안타까움을 더할 뿐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당산제도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젯밥은커녕 수고하신다고 물 한 잔 주는 이도 없을 것이어서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 벅수가 쓰러지고 나면 이 마을에 다시 벅수가 세워질까?
아닐 것이다.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더구나 마을에 새로 다리를 놓는 바람에 들머리가 달라져 버려 마을지킴이로서의 구실마저 잃고 말았다. 미초(美草)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풀이 자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마을 주변에 외지 사람들이 와서 건드리면 온몸이 간지러워 못 견디는 풀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이름의 마을에 홀로 남겨져 있는 암벅수를 살펴본다. 그러다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담은 새김솜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의 마을지킴이답지 않은 심성 고운 아름다운 새댁을 연상시켜 주는 새김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몇 차례, 찰나에 지나지 않는 날렵하고 정교한 새김질과 함께 장인의 가슴에 담아둔 오랜 연륜을 투영한 결과이다. 그러니 제발 쓰러지지 말고 버터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는 눈길엔 안타깝게도 벅수의 귀부분에서 풀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암벅수의 앞날도 이미 그늘이 지기 시작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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