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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동구)

오지호 가(吳之湖 家, 기념물 제6호)

by 햇살과 뜨락 2023. 6. 8.

오지호 가(吳之湖 生家, 기념물 제6호)

광주 동구 밤실로 4번 길 17-6(지산동)

  이곳은 서양화의 대가 오지호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근무 중이던 1954년부터 1982년 타계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원래는 100여 년 전의 건축물이었으나 퇴락하자 1986년에 전면적인 보수작업을 했다. 오지호(1905∼1982)는 인상주의의 회화 양식을 받아들여 토착화시킨 화가이다. 화순 동복 출신이며 휘문고보(徽文高普)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도일유학(渡日遊學) 유화가인 고의동(高義東)과 함께 있었으며 동경 미술학교에 유학했다.

  1948년 광주에 내려와 정착하였고,「광주미술연구회」를 조직하는 한편 조선대학교 미술과 교수를 역임했다. 또「전남도전」의 창립과 더불어 지방 미술의 발전을 주도하면 서구상회화 우위의 개념과 이론으로 광주권 화단의 유화 화풍을 고착시켰고 만년에는 교과서에서 한자를 병용하여 과학적 두뇌를 계발할 것을 강조하는 한자 교육 부활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국전 초대 작가, 심사 위원, 운영 위원을 역임하였고, 예술원 회원을 역임하였다. 1977년 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으며,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牧丹章)을 받았다. 오지호 가옥의 대문을 들어서면 화실로 사용되었던 채광창이 있는 문간채가 있다. 안채는 초가집인데 정면 4칸, 측면 1칸의 전후퇴집으로 우진각 지붕이다. 평면은 1칸 반의 부엌과 1칸씩의 방3개로 되어 있고, 배면에는 툇마루와 골방이 있다. 부엌에는 살창과 찬장을 복원했으며 판장으로 된 문은 옛날 것을 그대로 달았다. 부연은 대나무로 엮었고, 연목(椽木)은 가늘고 끝을 훑었다.

  기단은 막돌허튼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전면과 측면에는 네모기 둥, 뒷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현재의 기둥은 모서리 기둥만을 남기고 원래의 크기 대로 복원되어 있으며, 문은 외짝의 띠살문이다. 앞마루도 우물 마루를 살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 방형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납도리를 결구하였고, 가구는 고주( 高柱)위에 대량을 걸친 뒤 동자주, 종량, 종도리를 차례로 올려놓은 일반적인 구조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화실은 6평 남짓한 크기로 북쪽으로 채광창이 있고, 장마루와 맞배지붕을 한 유럽 스타일의 화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