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장(樂器匠, 무형문화재 제12호)
광주 동구 제봉로 75(서석동)
악기(樂器)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쓰이는 기구의 통칭으로 전통음악에 상용되는 국악기는 삼국시대를 전후해서부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전해오는 고유한 악기와 중국을 비롯하여 서역 및 기타 지방에서 수입되어온 외래 악기를 포함하여 약 60여종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방대륙과 인접하였던 관계로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계 및 서역계의 음악들이 들어왔고, 특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로는 당나라 음악이 수입되었다.
고려시대 이르러서는 송나라 속악(俗樂)과 아악(雅樂)이 수입되었는데, 예종 때 아악이 들어옴으로써 거기에 편성된 아직도 대량으로 들어왔다. 이 악기들은 ‘증보문헌비고 ’에서는 악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주재료에 의해 분류하였고, 특히 ‘악학궤범 ’에서는 악기의 용도, 즉 전래되는 고유한 향악에 사용되는 향악기 그리고 아악에 사용되는 아악기와 당악(唐樂)에 사용되는 당악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제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궁중악공들도 자유인이 되었다. 물론 관부< 官府 >에 속한 악기장들이 정악 중심의 악기를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민간에서는 산조< 散調 > 중심의 악기들이 제작되고 있었다. 이 산조악기는 개인 연주용이라고 할 수도 있어서 단체중심의 정악용 악기보다는 경쾌하고 운반이 쉽도록 만들었다. 일제시대 전주< 全州 >를 중심으로 김명칠< 金明七 >이 이름이 있었고 정읍< 井邑 >에서는 김붕기< 金鵬基 >(김학기< 金鶴基 >)가 이름있었다.
광복후 김명칠< 金明七 >의 기법은 그의 아들 김광주< 金廣胄 >에 이어져 71년 국가지정 제 42호 악기장 기능 보유자가 되었다. 그는 서울로 옮겨 최태귀< 崔泰貴 >, 고흥곤< 高興坤 >, 이영수< 李永水 > 등을 가르치다가 84년 4월 타계했다. 본디 이영수< 李永水 >는 정읍< 井邑 > 김붕기< 金鵬基 >의 기능을 받아 전북< 全北 >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김광주< 金廣胄 >의 기능도 전수받았다. 악기장은 본디 모든 악기를 만들 줄 알았으나 지금은 북, 장고, 꽹과리, 징, 젓대, 피리,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혁부< 革部 >, 금부< 金部 >, 죽부< 竹部 >, 사부< 絲部 >로 나눈다.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인 악기장 이복수는 가야금, 거문고 등 제작 악기장으로 지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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