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주의 문화재 (동구)

악기장(樂器匠, 무형문화재 제12호)

by 햇살과 뜨락 2023. 6. 8.

악기장(樂器匠, 무형문화재 제12)

광주 동구 제봉로 75(서석동)

  악기(樂器)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쓰이는 기구의 통칭으로 전통음악에 상용되는 국악기는 삼국시대를 전후해서부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전해오는 고유한 악기와 중국을 비롯하여 서역 및 기타 지방에서 수입되어온 외래 악기를 포함하여 약 60여종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방대륙과 인접하였던 관계로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계 및 서역계의 음악들이 들어왔고, 특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로는 당나라 음악이 수입되었다.

  고려시대 이르러서는 송나라 속악(俗樂)과 아악(雅樂)이 수입되었는데, 예종 때 아악이 들어옴으로써 거기에 편성된 아직도 대량으로 들어왔다. 이 악기들은 증보문헌비고 에서는 악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주재료에 의해 분류하였고, 특히 악학궤범 에서는 악기의 용도, 즉 전래되는 고유한 향악에 사용되는 향악기 그리고 아악에 사용되는 아악기와 당악(唐樂)에 사용되는 당악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제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궁중악공들도 자유인이 되었다. 물론 관부< 官府 >에 속한 악기장들이 정악 중심의 악기를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민간에서는 산조< 散調 > 중심의 악기들이 제작되고 있었다. 이 산조악기는 개인 연주용이라고 할 수도 있어서 단체중심의 정악용 악기보다는 경쾌하고 운반이 쉽도록 만들었다. 일제시대 전주< 全州 >를 중심으로 김명칠< 金明七 >이 이름이 있었고 정읍< 井邑 >에서는 김붕기< 金鵬基 >(김학기< 金鶴基 >)가 이름있었다.

  광복후 김명칠< 金明七 >의 기법은 그의 아들 김광주< 金廣胄 >에 이어져 71년 국가지정 제 42호 악기장 기능 보유자가 되었다. 그는 서울로 옮겨 최태귀< 崔泰貴 >, 고흥곤< 高興坤 >, 이영수< 李永水 > 등을 가르치다가 844월 타계했다. 본디 이영수< 李永水 >는 정읍< 井邑 > 김붕기< 金鵬基 >의 기능을 받아 전북< 全北 >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김광주< 金廣胄 >의 기능도 전수받았다. 악기장은 본디 모든 악기를 만들 줄 알았으나 지금은 북, 장고, 꽹과리, , 젓대, 피리,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혁부< 革部 >, 금부< 金部 >, 죽부< 竹部 >, 사부< 絲部 >로 나눈다.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인 악기장 이복수는 가야금, 거문고 등 제작 악기장으로 지정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