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72
장흥 방촌리 석장승(長興 傍村里 石長丞, 국가 민속문화재 제275호)
천관산(天冠山, 723m) 동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방촌리는 장흥 위씨들이 오백여 년 전에 자리 잡은 오래 묵은 마을이다. 관산읍에서 회진포구를 향해 남쪽으로 1㎞ 정도 가면 길 양쪽으로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방촌리의 6개 자연마을은 기와집으로 된 민가들이 상당히 많으며 중요한 특징을 가진 기와집들은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방촌리 주변의 바닷가에는 정남진 전망대가 있는데, 서울의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남쪽에 있는 나루라 하여 정남진이라 한다. 득량만 일대와 소록도, 거금대교, 완도, 금일도 등 수많은 섬들과 남해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며, 천관산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다.
방촌리 벅수골은 23번 국도가 지나는 곳인데, 길 양쪽으로 방촌리의 자연마을들이 오랜 역사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벅수골은 방촌리의 여러 마을에 이르기 전의 나직한 고개를 가리킨다. 이 언덕길 초입에 돌벅수가 있다. 방촌리 돌벅수 중 하나의 이름이 진서대장군이고 장군의 생김새가 1700년대 세워진 두창벅수들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천연두로부터 마을사람들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은 돌벅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설득력이 있다. 한편으로 옛 장흥성이었던 회주고성(懷州古城)의 서쪽 성문을 지키던 벅수였으며 고려시대에 세워졌다는 설도 만만치 않다.
진서대장군은 회주고성이 없어지자 팔자에 없는 백수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지 조선시대 양란 이후로 절집에서 마을로 내려온 미륵부처와 한 쌍이 되어 방촌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마을제사인 별신제의 신격이 되었고 나을 사람들은 돌벅수, 돌부처 두 분에게 제를 올린다. 이것이 국가민속문화재로서의 격을 갖게 된 배경이지만 조형적으로는 조금 아쉽다.
고려 때 일본 정벌을 위한 여원연합군이 발진하면서 회주성의 수호와 무훈장구를 위해 세웠다는 설과 풍수지리로 볼 때 회주성의 서쪽이 약하다 하여 그걸 막고자 하여 벅수를 세웠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 두창벅수로 천연두를 막기 위해 18세기 이후에 세워졌다는 생각도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어쨌든 쌍을 이룬 돌벅수와 돌미륵은 오늘도 자기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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