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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논산 명재고택 봉황석 짐대

by 햇살과 뜨락 2023. 5. 17.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번지 명재고택 내

  명재고택은 3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지탱하고도 거의 훼손이 없는 조선 중기 양반 살림집으로 당시 양반집의 전형적인 모습과 독특한 나름의 멋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 집은 대문이 없어 누구나 쉽게 사랑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열린 공간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문 구실을 하는 연못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사랑마당이 펼쳐지고 왼쪽은 정원과 안채를 만난다. 안채는 대문이 있는 문간채로 사사로운 공간임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사랑마당과 안채 입구의 한가운데에 우물이 있는 것도 이 집의 독특함 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상당히 많은 집이다.

  우물곁에 ‘무산십이봉’을 상징하는 석가산을 만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사랑채의 바로 앞에는 봉래산이라는 여름 금강산의 미니어처를 두었다. 그 외에도 정원의 구성과 꽃과 나무들이 소박한 목조 기와집과 조화를 이루어 잔잔하게 가슴으로 다가든다. 사랑채를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추모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장독대 너머로 멀리 보인다. 이 사당 앞의 공터에 커다란 항아리를 질서 정연하게 배치한 상당한 규모의 장독대가 있는데, 가문에서 전해지는 비법의 장과 된장 등, 전통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숨 쉬는 질그릇인 항아리는 우리의 전통 먹거리를 갈무리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우리 음식의 비밀이 담겨 있는 보물창고다.

  여기에 짐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장독대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봉황석 짐대는 높이만 낮을 뿐, 강원도 건봉사의 봉황석 짐대를 빼닮았다. 후손의 말을 빌리면 이 짐대 위의 모셔진 새는 오리가 아니고 봉황으로 사당에 모시는 선현들의 환생을 기원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짐대와는 다른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근래에 세워진 것이어서 문화재적인 중요성은 약하지만, 유학자 집안에 민간신앙의 신체를 모신 것도 주목할 만하고 마을이 아닌 가정에서 짐대를 모시는 특이함을 가기고 있어 주목한다.

  명재고택은 명재 윤증(明斋 尹拯 : 1629〜1714)의 집이라고 하지만 그를 기리는 제자들의 성금으로 지어졌으며 생전에 그가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호유학의 대학자이자 소론의 영수로 일컬어지는 그는 같은 서인 계열이었던 우암 송시열과 정국을 대하는 기본적인 입장이 달라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의 남인과 북인으로 나누어진 어지러운 중앙정계는 서로 극심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서로 이해하고 보완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 까닭으로 관직에 나오라는 부름을 받고도 끝까지 응하지 않았던 그는 죽은 후, 우의정으로 제수되었을 만큼 존경과 인정을 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백의정승이라 불리기도 한다.

논산 명재고택 봉황석 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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