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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고창 임리마을 나무짐대 당산

by 햇살과 뜨락 2023. 5. 17.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임리 마을

 

  유난히 높다. 아마 우리 나라 짐대들 중 상당히 높은 짐대일 곳이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에 7∼9 m 정도 되는 높다란 짐대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많을 때는 6기까지도 모셔져 있다. 고개를 한참 쳐들어 바라보다 보면 어지럼증을 느낀다. 나무기둥 위에는 신우대로 만든 대발을 깔고 나뭇가지를 어설프게 다듬은 오리를 한 마리씩 올려놓았다. 오리는 하늘을 향해 그대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다.

  ‘마을과 마을 주변을 빙둘러보아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없으니 저렇게 높은 짐대를 세운 것은 괜한 걱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법, 마을의 서북쪽으로 보이는 부안면의 촛대봉이 화재를 일으키는 나쁜 기운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멀리 있는 촛대봉의 나쁜 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수고스럽게 ‘화재 맥이’ 구실로 짐대를 세워 놓은 것이다.

  임리 마을은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로 140여 호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동쪽에서 북쪽으로 빙 둘러진 낮은 구릉에 포근하게 안겨 있다. 다만 마을의 들머리가 서남쪽의 들을 향해 넓게 벌어져 조금은 허전함을 주는 지형이다. 그런 까닭으로 들머리의 양쪽에 각각 1m 못 미치는 작은 선돌을 세우고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으로 모신다. 두 당산은 50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또 마을과 집안의 뒤편에 주로 모시는 천룡당 산은 200여 년 묵은 소나무 다섯 그루로 마을 뒤 구릉에 모셨다.

  짐대 위의 오리의 방향은 마을 쪽인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4기, 남쪽을 바라보는 것이 2기이다. 짐대는 매년 하나씩 만들어 모시는데, 한번 세운 것은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 임리에서는 할아버지 당산의 짐대를 ‘지음대’라 부르기도 하는데, 불은 양, 물은 음으로 여겨 물로써 불을 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음대라 이름 하였다. 대부분의 짐대에 오리를 올리는 이유는 오리가 물과 친하기 때문에 화재를 막고자 하는 바람을 이루어 줄 것으로 믿는 까닭이다.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은 볏짚을 거두어서 암줄과 수줄을 만든 후, 두 줄을 다시 꼬아 줄다리기용 동아줄을 만든다.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동아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오방 돌기’를 한다. 오방돌기로 분위기 잡은 뒤 줄다리기를 하는데, 암줄을 당기는 서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 때문에 늘 암줄이 이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암줄과 수줄을 차례로 짐대에 감는다. 이것은 부안, 고창, 영광에서는 ‘옷 입히기’라 하며 짐대에 감은 줄은 이듬해 줄다리기할 때까지 그대로 둔다. 이 지역의 짐대들은 서로 모양과 구실이 조금씩 다르면서도 내용을 관통하는 오래 묵은 민간신앙의 요소들이 문화적 연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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