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 2구 금상마을
금창리 금상마을의 당산은 30여 가구에 불과한 산골마을답지 않게 규모가 크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작은 돌들로 쌓은 3단의 돌탑 위에는 한 쌍의 선돌을 모시고 돌탑 곁에는 짐대를 세웠다. 이런 모양의 돌탑을 전라도에서는 조탑 또는 적석탑이라 하고 제주도에서는 방사탑, 거오기 등으로 부른다. 언뜻 가야의 마지막 왕의 묘인 구형왕릉을 떠올린다. 보통 선돌은 하나만 탑 위에 세우는데, 어떤 의미인지 알 수는 없으나 금상마을의 것은 한 쌍이 세워져 있어 특이하다.
장군봉 자락에 안긴 금창리 금상마을은 풍수지리상 군왕이 태어날 명당(君王之地)으로 금상(今上)이란 마을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다고 한다. 다만 천기를 누설하지 않기 위하여 금이 나온다는 금상(金箱)으로 이름을 고쳤다. 소설 ‘남부군’의 주 무대로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회문산 여러 골짜기 중 하나에 자리 잡은 금상마을은 규모 있는 복합당산을 꾸미고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였다. 또한 배의 모양을 한 땅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는 풍수지리인 믿음 때문에 최근까지도 마을 뒷산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 사용하고 있다. 마을 들머리에 돌탑과 짐대를 세운 것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음이었다. 원래 마을 들머리 양쪽으로 영감 탑과 할매 탑이 짐대와 같이 있었으나 영감 탑은 오래전에 없어져 버렸고 할매 탑만 외롭게 남아있다. 이 당산에는 아직도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룻날이면 탑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정성 덕에 한국전쟁 때 한 사람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마을의 들머리 왼쪽에 약간의 문전옥답이 있고 그 논 가운데에 지름이 3m가 넘는 커다란 돌탑을 쌓았는데, 바로 이 돌탑 곁에 짐대가 서 있다. 짐대 위의 오리의 방향은 마을을 향하게 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보통 ‘진대’라고도 부르는 짐대의 높이는 5∼6m 정도이다. 매년 탑제를 지내면서 짐대를 하나씩 세우기 때문에 해묵은 짐대 여러 기가 남아있다. 원래는 돌탑 옆에 2기, 그 반대편 길가에 1기 등 모두 3개의 짐대를 세웠었다고 하나, 한국전쟁 직전부터 1기의 짐대 만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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