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궁안리 대벌마을
쌍조석간(雙鳥石竿, 전북 민속문화재 제17호)
대벌마을은 계화간척지의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안겨 있다. 기대고 있는 산은커녕 나직한 구릉조차 없는 평지에 가꾼 마을로 ‘징게맹게 외배미들’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평지마을이다. 거기에 걸맞게 이 마을의 짐대는 더욱 특별하다. 부부인지 모녀인지 관계를 알 수 없는 두 마리의 오리가 돌기둥 위에 모셔져 있다. 보통 짐대 하나에 오리 한 마리만을 올리는 경우가 많고 강원도 등 일부 지방에서는 세 마리를 함께 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 비스듬히 세워진 돌기둥에는 한 쌍의 돌오리가 모셔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민족의 세계관을 ‘3수 분화의 세계관’이라고 주장하는 우실하 교수는 ‘우리 민족이 숫자 1, 3, 9, 81 등의 3의 제곱이 되는 수를 신성시한다.’고 한다. 그의 연구에는 음양론을 중심으로 하여 2, 4, 8, 64 등을 신성시하는 문화를 ‘2수 분화의 세계관’이라 하고, 성경과 수메르 문화에서 7, 49 등을 신성시하는 문화를 ‘7수 분화의 세계관’이라 하여 우리 문화와 비교 분석했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요소들 중에는 은연중 ‘3수 분화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짐대는 그것을 벗어나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게 한다. 설마 음양론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겠지 이런 내용과는 달리 짐대 위에 올린 새의 수는 마을의 허한 곳이나 방향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있어 나름의 설득력을 갖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돌짐대는 이 마을 남동쪽 들머리에 있다. 간척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들머리였으나 지금은 옛 바다 쪽으로 길이나 마을 안쪽이 되어버렸다. 여기에는 모녀의 느낌이 다분한 두 마리의 돌 오리를 모신 짐대와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소나무는 할아버지 당산으로 별다른 기능이 없다. 본래는 나무기둥이었으나 근래에 소나무를 심어놓은 것이다. 돌짐대는 할머니 당산으로 할아버지 당산과 부부 신이라고 한다. 돌기둥으로는 제법 높은 360㎝의 높이이며 중간 부분에 1749년에 세웠다는 명문이 오목 새김 되어 있다. 270여 년이나 된 제법 오래된 돌 짐대이다.
마을제사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에 지냈으나 1978년 이후 중단되어 안타깝다. 제사 후에는 무명베 한 필을 동장과 화주가 한 가닥씩 잡고 잡아당겨 동장이 잡은 베가 손목 근처에서 끊어지면 길하다고 여겼다. ‘베다리기’라 부르는 이 의식은 줄다리기가 독특하게 변형된 것으로 짐작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베다리기를 했던 무명베를 예쁘게 고를 내면서 감아 주는 ‘머리 얹기’를 한다. 한 쌍의 돌오리를 무명베로 감아주는 것으로 줄다리기의 줄로 짐대를 감싸는 ‘옷 입히기’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머리 얹기를 하는 돌오리 한 쌍의 관계가 부부인가 아니면 모녀일까 돌짐대는 소나무와 부부 신으로 모셔지니 돌오리 한 쌍의 관계는 모녀일 가능성이 높으나 시대의 풍속에 따른 일부다처제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민간신앙의 유산들을 답사하다 보면 자료나 기록이 없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벌마을은 계화간척지의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안겨 있다. 기대고 있는 산은커녕 나직한 구릉조차 없는 평지에 가꾼 마을로 ‘징게맹게 외배미들’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평지마을이다. 거기에 걸맞게 이 마을의 짐대는 더욱 특별하다. 부부인지 모녀인지 관계를 알 수 없는 두 마리의 오리가 돌기둥 위에 모셔져 있다. 보통 짐대 하나에 오리 한 마리만을 올리는 경우가 많고 강원도 등 일부 지방에서는 세 마리를 함께 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 비스듬히 세워진 돌기둥에는 한 쌍의 돌오리가 모셔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민족의 세계관을 ‘3수 분화의 세계관’이라고 주장하는 우실하 교수는 ‘우리 민족이 숫자 1, 3, 9, 81 등의 3의 제곱이 되는 수를 신성시한다.’고 한다. 그의 연구에는 음양론을 중심으로 하여 2, 4, 8, 64 등을 신성시하는 문화를 ‘2수 분화의 세계관’이라 하고, 성경과 수메르 문화에서 7, 49 등을 신성시하는 문화를 ‘7수 분화의 세계관’이라 하여 우리 문화와 비교 분석했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요소들 중에는 은연중 ‘3수 분화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짐대는 그것을 벗어나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게 한다. 설마 음양론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겠지 이런 내용과는 달리 짐대 위에 올린 새의 수는 마을의 허한 곳이나 방향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있어 나름의 설득력을 갖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돌짐대는 이 마을 남동쪽 들머리에 있다. 간척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들머리였으나 지금은 옛 바다 쪽으로 길이나 마을 안쪽이 되어버렸다. 여기에는 모녀의 느낌이 다분한 두 마리의 돌 오리를 모신 짐대와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소나무는 할아버지 당산으로 별다른 기능이 없다. 본래는 나무기둥이었으나 근래에 소나무를 심어놓은 것이다. 돌짐대는 할머니 당산으로 할아버지 당산과 부부 신이라고 한다. 돌기둥으로는 제법 높은 360㎝의 높이이며 중간 부분에 1749년에 세웠다는 명문이 오목 새김 되어 있다. 270여 년이나 된 제법 오래된 돌 짐대이다.
마을제사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에 지냈으나 1978년 이후 중단되어 안타깝다. 제사 후에는 무명베 한 필을 동장과 화주가 한 가닥씩 잡고 잡아당겨 동장이 잡은 베가 손목 근처에서 끊어지면 길하다고 여겼다. ‘베다리기’라 부르는 이 의식은 줄다리기가 독특하게 변형된 것으로 짐작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베다리기를 했던 무명베를 예쁘게 고를 내면서 감아 주는 ‘머리 얹기’를 한다. 한 쌍의 돌오리를 무명베로 감아주는 것으로 줄다리기의 줄로 짐대를 감싸는 ‘옷 입히기’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머리 얹기를 하는 돌오리 한 쌍의 관계가 부부인가 아니면 모녀일까 돌짐대는 소나무와 부부 신으로 모셔지니 돌오리 한 쌍의 관계는 모녀일 가능성이 높으나 시대의 풍속에 따른 일부다처제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민간신앙의 유산들을 답사하다 보면 자료나 기록이 없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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