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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와 짐대

사천 가산리 돌벅수 당산

by 햇살과 뜨락 2023. 5. 17.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 626-1번지

가산리 석장승(駕山里 石長丞, 경남민속문화재 제3호)

사천 가산리 상신장(4기)

     

  가산리 돌벅수에는 유학자인 고을현감들의 생각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탓인지 이곳의 돌벅수들은 모두 문인석, 동자석과 거의 닮은꼴이며 문인석과 동자석은 높은 벼슬을 한 양반들의 묘를 지키는 시묘석인이다. 가산리는 가화강과 사천만이 만나는 곳으로 조창(漕倉)의 하나인 가산창이 있었던 곳이다. 가산창은 조선시대 경남 서부지역 일곱 개 군현의 공물을 모아 보관하다가 바닷길로 여수를 거쳐 한양으로 보내는 곳이었다. 유학자이고 문인인 군현의 수장들은 공물을 보관․이동하는 동안 무사하기를 빌며 지킴이인 벅수에게 제를 올릴 때마다 머리를 조아려야 했는데, 그 대상이 벙거지를 쓴 무인의 모습이어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가산리의 돌벅수가 문인석과 동자석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정신적 토대와 문화적 소양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운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산리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펼쳐지는 가산오광대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탈놀이인 가산오광대는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오광대는 남부지방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이름은 오행설에서 유래된 숫자 5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천룡제를 지낸 후부터 풍물패가 지신밟기를 하다가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부터 마을제사를 지내는데 벅수제도 같이 치러진다.

  가산오광대는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 첩의 문제 를 다루고 있다. 또 유일하게 오방신장무의 춤사위가 남아 있는 소중한 탈놀이기도 하다. 이 마을의 돌벅수는 조창의 공물을 지키다가 조창이 없어지고 난 뒤, 마을지킴이로 구실을 바꾸고 민중에게 봉사하게 됐다. 네 쌍의 돌벅수가 있는데, 그중 동자석 한 쌍은 도난당한 뒤 새로 만들어졌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마을 들머리를 벅수골이라 부르고 그곳의 당산나무 주변에 모셔져 있는 4기의 벅수를 하신장(下神將)이라 한다. 마을 앞의 길 양옆에 모셔져 있는 4기의 벅수는 상신장(上神將)이라 칭하며 마을사람들은 문인석과 닮은 벅수를 남자벅수, 동자석은 여자벅수라 일컫는다.

    남자벅수들은 120㎝ 보다 낮은 높이의 아담한 크기로 갸름하고 앳된 얼굴이며 관모를 쓰고 앞에서 모아 쥔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관복처럼 보이고 입은 꽉 다물고 있다. 여자벅수는 동자석처럼 머리에 2개의 상투를 튼 모습으로, 긴 장옷을 입고 모아 쥔 두 손에 홀을 들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다.

 

사천 가산리 하신장(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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