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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백운동 서원은 풍기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설립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선생을 봉안하고 지역의 유생들을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을 함께 설립하였다.(영주시 순흥면 소백리) 1543년 한양에서 안향의 영정을 옮겨와 봉안하고서 처음으로 이름을 '백운동 서당'(白雲洞 書堂)이라 하였다. 이후 1545년(인종 원년) 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補)의 영정도 함께 배향하면서 백운동 서원(白雲洞 書院)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어 1549년(명종 4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서원의 격을 높이고자 했다. 그래서 송(宋) 시대의 예를 언급하며 국가에서 서원에 대한 합법적인 인정과 정책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당시 경상도 관찰사 심통원에게 요청.. 2023. 9. 30.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2023. 9. 17.
백호 임제(白毫 臨際, 1549 -1587)勿哭辭 임제 백호(1549 -1587) 백호 임제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선시대 풍류객이다. 아니 풍류객이라 해도 좋을 듯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35세 때 평안도사(종 6품)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송도(지금의 개성)의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올리고 제를 지내며 추도시를 읊었다 하여 조정으로부터 파직을 당한 로맨티시스트가 바로 백호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 가 누웠는가. 홍안을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시조를 양반 신분에 기생의 무덤 앞에서 예를 갖추고 읊었으니 그 자유분방함이 가히 풍류객답다. 그녀가 15세 때 이웃에 사는 어느 서생이 그녀를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었는데 상여가 황진이집 앞에.. 2023. 9. 4.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1529~1590)과 자산서원(紫山書院) 곤재 정개청 (困齋 鄭介淸,1529~1590)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困齋). 아버지는 세웅(世雄)이다. 어려서 중이 되어 보성의 영주산사(瀛州山寺)에 들어가 풍수설과 성리학, 지리, 의약, 복서 등을 배웠다. 그뒤 박순(朴淳)에게 10여 년을 배우고 1574년(선조 7) 전라감사 박민헌(朴民獻)의 천거로 1585년 교정청낭관을 거쳐 영릉참봉·나주훈도·전생서주부·곡성현감을 지냈다. 서인인 영의정 박순이 파직되자 동인인 정여립(鄭汝立)·이발(李潑) 등과 친교를 맺었다. 1589년 〈절의청담변 節義淸談辨〉을 지어 자신의 처지를 변명했으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절의론(排節義論)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1590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었고 함경도.. 2023. 9. 1.